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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an 29. 2021

아주편한병원은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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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회사에 정직원으로 디자이너로서 계약서를 쓰고 첫 출근을 해서 직원 미팅을 했다. 거기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사내 기밀이라 노코멘트하기로 하겠다. 이상한 일을 하는 회사라 그런 것은 아니고, 무엇인가 일을 하나 시작하면 주위에서 돈이 되겠다 싶으면 다 따라 해서 경쟁자들을 양산하여 레드오션을 경험한 사장님의 분부이다. 사장님은 내 친동생이다. 회사 일을 기밀이지만, 동생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정직원으로 취직을 하게 된 정도는 동생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말해도 되는 내 개인의 사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계약서에서도 쓰여 있지만 회사의 일은 밖에서 함부로 이야기하고 다니면 안 된다. 그러나 동생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정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정도의 정보는 회사 기밀이 아니라 그냥 개인사라고 생각한다.


지금 회사는 신촌에 있는데 방배 쪽에 일이 있어 갔다가 그쪽에서 퇴근을 했다. 같은 날 입사하여 같이 일하게 된 직원이 나를 방배에서 사당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같이 입사한 동료 직원은 동생의 아내 그러니까 나에게는 제수씨의 동생이다. 뭐라고 호칭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회사 내에서 공식 직함과 호칭이 생길 때까지 OO 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제수씨의 동생은 나에게 본인이 나보다 많이 어리니 말을 놓으라고 하는데, 내가 나이가 먹으면서 배운 한 가지는, 정말 사적인 친구나 형 동생 먹을 사이가 아니라면, 회사의 상사뿐만 아니라 동료나 부하직원을 포함한 사회에서 만난 사이나, 가까운 친척이라고 할지라도 동생의 아내인 제수씨나 그 동생에게는, 그쪽에서 말을 놓으시라고 해도 존댓말로 가는 게 좋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며칠 지나면 이렇게 말해 놓고도 말을 놓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사적으로 아주 친한 친구나 형 동생 아닌 사회적 만남에서는 서로가 높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제수씨의 동생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은 회사 동료 직원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제수씨의 동생도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가깝다고 보면 가까운 사이지만 사적인 관계라기 보다도 사회적인 관계이다. 여기서 사회는 회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가족을 말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자손인 친척 동생들에게는 말을 놓는 게 당연한 것인데, 제수씨의 동생이나 아내 에미마의 오빠 여동생에게는 다른 사람들처럼 높여 존중해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나는 그렇게 한다. 사회생활에서 조금 친해졌다고 적절한 거리두기에 실패해서 딘 적이 있어서 지금은 인간관계에서 안전모드로 가기로 했다.


신촌 회사에서 퇴근을 했으면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에서 갈아타서 집 근처인 화서역에서 내려 걸어왔을 텐데, 오늘은 방배역 근처에서 퇴근하여 사당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서 내려 집으로 오기로 했다. 사당에서 출발하여, 수원의 몇 군데 정류장을 찍고, 수원역으로 향하는 빨간 버스이다. 나를 태운 빨간 버스가 수원으로 들어왔는데, 버스의 내리라는 안내 목소리에서 익숙한 병원 이름이 귀에 들어왔다.


다음 정류장은 국세청 삼거리 아주편한병원입니다.

아주편한병원은 내 평생에 조울증으로 가장 위험했던 2009년 가을에 입원했던 병원이다. 원래 다니던 병원도 아니었고, 아는 병원도 아니었다. 그 당시 다니던 병원은 따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병원이 입원 병원이 아닌 외래병원이라서 수원에서 입원 병원을 찾았다. 다른 병원에서인가 소개해 준 병원 중에서 어머니가 어떤 병원에 가고 싶냐고 나에게 의향을 물어보았는데, 나는 아주편한병원이 이름이 아주 편한 병원이어서 아주 편한 병원인가 보다 하고 그 병원에 갔다. 내가 갔던 병원 원장 선생님은 TV에도 패널로 나오시고 유명하신 훌륭하신 분이시지만, 아주편한병원은 아주 편한 병원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경험해 본 결과 대부분의 정신과 입원 병원이 똑같이 아주 편하지는 않다. 아주 편하지 않은 병원이라고 나쁜 병원이라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정신병동의 그렇게 아주 편하지만은 않은 병원이다. 아주 편한 병원도 간혹 있는데, 대학병원 정신과 개방병동은 그렇다. 아주편한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그 당시 다니던 병원 말고 그 이전에 주치의였던 분당 서울대병원 하규섭 교수님을 다시 찾아갔다. 하규섭 교수님은 현재는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로 계시면서, 서울대병원 본원에서 진료를 보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조울증 분야에서는 일인자이자, 세계적인 조울증 권위자라고 알려져 있는 분이다. 물론 성품이 혈기가 많고 그래서 환자마다 하 교수님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기는 한다. 특히 정신과 의사는, 그 분야에서 최고 의사라고 해서, 나에게 좋은 의사도 아니다. 퇴원 후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전 주치의를 찾아갔는데, 아직 조울증이 덜 가라앉았다고 더 입원하라고 했다. 분당 서울대병원 정신과 개방병동에 입원했었는데 그곳은 완전히 천국이었다. 대부분의 정신과 병원은 지옥이고, 소수의 대학병원급 정신과 병동은 왜 천국인지는 이 글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겠다.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다른 글을 통하여 한 번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데 딱 2주 입원하고 퇴원했다. 주치의가 이제 좋아졌다 퇴원해라 해서 퇴원한 것이 아니라, 너무 비싸서 부모님이 퇴원시켰다. 나는 2009년 조울증으로 길에서 객사할 수도 있었을 만큼 일생일대의 위험한 고비를 겪었었기에, 아주 편하지만은 않은 아주편한병원에서 3개월 입원 후에, 다시 분당 서울대병원에 하 교수님을 찾아가 하 교수님의 권유로 2주 정도 천국에서 입원했다. 지옥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천국은 상대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비쌌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신 부자들에게는 대학병원의 쾌적한 정신과 병동을 추천하나, 그냥 나 같은 보통 이하의 경제적 계급들은 당연히 아주 편하지는 않은 입원 전문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어머니께서 계산하셔서 나는 정확한 입원 비용은 기억하지 못하나, 천국과 같은 병원에서 딱 2주 입원했고, 후에 재발해서 생애 두 번째로 위험하던 시기에 분당 서울대병원 급의 천국과 같은 병원에 입원하고 싶었지만 아주 편하지는 않은 아주편한병원 급의 다른 병원에 입원했던 것은, 천국은 비싸고 지옥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옥도 결코 싸지는 않은데, 보통 사람들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싸다는 의미이다. 천국은 보통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 갔거나 아니면 누가 돈을 대 주어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싸다.


정식으로 계약서 도장을 찍고 첫 출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주 편하지는 않았던 아주편안병원에 대한 옛 추억이 떠올라서 글을 써 보았다. 나는 결코 그 병원을 비판할 의도가 없다. 그 병원의 환경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정신과 병원이 환자 입장에서 그렇게 쾌적하지 않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학병원이나 메이저 종합병원 급의 VIP 병동이 아니더라도, 메이저 병원들의 보통 병동들만 해도 쾌적하다. 다른 과는 모르겠으나, 정신과는 특별히 보통의 입원 병원들보다 쾌적하다. 대신 엄청 비싸다. 혹시 아주편한병원 관계자들이 보시면 오해하시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은, 그 병원 의료진들과 원장 선생님 대단히 훌륭하신 분들이다. 다만, 대부분의 정신과 병동은 아주 편하지는 않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떼로 창살 안에 갇혀 있는데 당연히 아주 편하지는 않다. 내가 경험한 분당서울대학병원 정신과 개방병동 한 군데만 빼고 말이다. 대신 엄처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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