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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Feb 25. 2021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다만 너의 스티커가 되고 싶었던 거야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다만 너의 스티커가 되고 싶었던 거야

너에찰싹 달라붙어 다시는 떨어지지 않는

그런 스티커가 되고 싶었던 거야 아주 귀여운 미치게

우둘들 하게 붙지도 잘 떨어지지도 않는

지저분한 어떤 불편한 무엇 아닌

예쁘고 깨끗하게 자연스럽게 달라 붙어 너에게로 녹아버린

한 번 새겨지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불멸의 타투처럼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그렇지만 내게도 단 하나의

전제와 원칙이 있었던 거야

너에게 달라붙은 나란 스티커를

떼어버리고 싶지 않은

영원토록 한 몸처럼 달라붙어

해체되고 분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장본인은

내가 아닌 바로 너이기를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처음 다가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이름 참 좋으시네요

무슨 의미가 있죠 하고

그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반칙과 사기의 캐릭터로 환한 미소로 다가와

나의 영혼의 지축을 뒤흔들고

나의 심장을 훔쳐간 심장 절도죄의 숭악한 범인은

내가 아닌 바로 너였다는  사실을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예쁜 엽서 한 장에

못 쓰는 초딩 글씨로

또박또박 둥근 정자로 공들여

내 인생에 찾아온 단 한 편의 시를 적고

우리 친구 할래요 할 때

그래요 우리 친구해요 했던 것 또한

바로 너였다는  사실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또한 여자의 웃음과 친절이

물리적 약자로 사회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진화심리학적 분석에 낮은 단계의 엄지척 정도의 표는 옛다 던져줄 수 있지만

남자에 대한 섹슈얼 감정을 드러내는

비유와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숙한 풋내기는 아니었던 거야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그래요 우리 친구해요 하는

나의 작용에 대한 너의 반작용과

나의 Thesis 정에 대한 너의 Antithesis 반

썸이나 호감으로 착각하거나

착각하고 싶었던 것 또한 아니었던거야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남자가 너처럼 예뻐서 착한 착해서 예쁜

한 송이 아리따운꽃과 같은 여자에게

한 땀 한 땀 정성들인 손글씨의 엽서로

예쁜 자작 시 한 편 적어

우리 친구할래요 하는 말이

여자가 가슴이 설레는 남자에게

쓰러뜨려 포개어지고 싶은 탐나는 남자에게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어둡고 좁은 사망의 음침한 골목길

혼자 사는 풀옵션 신축 원룸 빌라 앞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하는 말이랑

본질적으로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몰랐던 거니 모르는 척했던 거니

그냥 아는 친구로 아는 오빠로 지내고 싶었던 거니

아니면 니 작은 원룸의 더 작은 어항 속

보험으로 관리하는 물고기들의 어장 풀(Pool)에

한 마리 금붕어로 나를 퐁당 집어넣어 사육했던 거니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우리 동네 군 공항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 신음 소리보다 더 커진

널 향해 뛰는 나의 고장 난 심장소리를

더 이상 들키지 않을 수 없었을 때

예뻐요 사랑해요

무슨 말 더 필요하겠어

하고 한 줄 깨톡을 남겼을 때

전 제가 예수님처럼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날 거예요 했었지

서툴렀던 이십 대 초중반이었던 나는 다만

알겠어 가 원한다면 더 이상 다가가지 않겠어

다만 난 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먼저 예수님처럼 존경할 수 있는 남자가 되겠어

하고 뻐꾸기를 날리는 청춘 사업의 고급 테크닉을 알지 못했을 뿐이야 다만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예수님처럼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겠다던 니가

닭이 두 번 울기도 전에

스승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 했던

수제자 베드로 같은 남자도 아닌

예수님과 열두 아이들의 돈궤를 맡아 회계를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롯 유다 같은 남자도 아닌

어디 강남 호스트선수 제비 카사노바처럼

면상에 기름기만 잘잘 흐르고

허우대만 멀쩡하고 어깨만 뽕 들어간 골빈 놈씨랑

시내 롯데리아에서 히히덕 대며 

지금은 품절되어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라이스버거를 먹으며 놀고 있던 장면이

아무 맥락과 콘텍스트와 상관없이

그냥 멍 때리며 길거리를 지나가던 내 눈의 레이더에

롯데리아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포착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그때까지 나의 최고로 애정하던 버거가 라이스버거였다는 바로 그 사실을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그때 이후로 나의 최고로 혐오하는 버거가

라이스버거가 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을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내 꿈이 너랑 롯데리아에서 라이스버거를 먹는 것이었다는 바로 그 사실을

근데 알이야 너 그거 아니

그때 나의 저주로

롯데리아 라이스버거가 품절되어

더 이상 그 누구도 

그 맛난 나의 혐오식품을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을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

널 이만큼 사랑한다는 나의 표현에

95개의 깨똑 반박문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니가 정중하게 거절을 했기에

나는 널 향한 나의 108 번뇌가 아로 새겨진

108 깨똑을 보내도 괜찮은 줄 알았던 거야

가 먼저 95개의 깨똑 반박문을 날렸기에

나 또한 널 향한 나의 108개 번뇌의 깨톡을 너에게 날려도 괜찮은 줄 알았던 거야

너에게 내 마음이 전달되리라 생각했던 거야

108개 번뇌의 공간도 무게도 없는 0과 1의 깨톡 코딩 소스가

누군가의 멘탈에 108개의 고민의 비수로 날라가 꽂힐 수도 있다는 것을

난 미처 몰랐던 거야

아니 너에게 미쳐 나도 모르게

Automatically 뛰기 시작한 나의 심장을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

난 단지 그 방법을 몰랐던 거야


같은 도시에서 공부하던 니가

학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널 보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아

니 집이 부평인지 부천인지 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채

부천역 교보문고에서 몇 날 몇 일 몇 시에 보자고

답이 올리 없는 원사이드 이메일을 보내고

무작정 달려갔었던 거야

당연히 니가 나올 리 없음도 모른 채

나중에 전해 들은 사실은

니네 집이 부천이 아니라 부평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네이버 지도를 보며 알게 된 또 다른 실은

부천이나 부평이나 경기도와 인천을 가로지르는 옆동네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진실은

너에게 귀엽고 예쁜 스티커가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이

어떤 차원에서 너에게 스토커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스티커가 되고 싶었지

누군가에게 스토커로 남고 싶지는 않아

내가 널 떠나기로 했었던 거야

내가 널 지우기로 했었던 거야

아무리 사랑해도 날 사랑하지 않는 너

널 사랑하지 않아 더 이상

너가 날 찼지만 처음엔

내가 널 찬 거야 마지막으로

착각하지 말길 바래 제발


안녕

다신 만나지 말자 꿈속에서도

안녕

다신 스치지도 말자 현실에서도

툇툇툇

너에게 소금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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