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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y 26. 2021

영감님 그분이 오시지 않는 날엔 엉덩이로 글을 쓴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한 번 눈이 뜨면 너무 일찍이라도, 다시 잠에 들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침대에서 한동안 뒤척이다가, 마루에 나와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각이 아침 6시 10분 경이다.


글이란 게 아무 때나 써지는 것은 아니다. 글감이 떠 오르고, 필을 받아야, 글이 써지는 것이다. 물론, 다시 오지 않을 아이디어가 나를 찾아온다고, 그것을 항상 붙잡아 두지도 못한다. 그 순간에 생활전선에서의 전투로 분투하며, 글이나 메모로 담아두지 않으면, 인생 아이디어는 나를 떠나 휘발되어 남아있지 않게 된다.


글을 쓰는데 소위 영감이 필요하다. 영감님 그분이 항상 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영감님 그분이 오실 때만을 기다릴 수 없다. 영감님 그분이 오시는 날, 내가 생활전선에서의 치열한 전투로 바빠, 그분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분은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여 가시던 길로 간다.


영감님이 오시지 않는 날엔 엉덩이로 글을 써야 한다. 노트북 앞에 앉는다. 유튜브 뮤직이나 네이버 VIBE 음악을 틀어 놓는다. 영감님이 나를 떠나 오시지 않는 날에는, 브런치와 블로그를 켜 놓고,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엉덩이로 글을 쓴다.


엉덩이로 한창 글을 쓰다 보면 글이 된다. 안 되는 글을 엉덩이로 쓰다 보니 글이 써지고 되는 날에는, 날 떠나 제 갈길 가신 야속한 영감님 그분이 내가 글을 쓴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돌아오시기도 한다.


글이 써지는 날만 글을 쓰는 사람은 취미가 글쓰기이지 글쟁이는 아니다. 글쟁이는 영감님 그분이 오시는 날에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분이 오시지 않는 날에는 엉덩이로 글을 써야 한다. 엉덩이로 글을 쓰다 보면 휘발되었던 영감이 다시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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