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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y 31. 2021

이럴 때 오빠가 집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생각했어요

"에미마! 일 끝나고 바로 집에 오려고 했는데.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아이씨, 아이씨' 했어. 일 끝나고 집에 막 오려는데 스마트폰이 꺼져서, 집에 전철 타고 오면서 스마트폰으로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아이씨, 아이씨' 했어."

"오빠! '아이씨, 아이씨 많이 했어?"

"아니. 아주 조금. 속으로만 했어."


평소에는 하루는 방배, 하루는 이대, 격일로 무인으로 운영하는 지점으로 출근하여, 쓰레기 분리수거와 청소를 하고 신촌 사무실로 향한다.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 공모전이 마감일이라, 지점 청소는 일 끝나기 전으로 미루고 바로 신촌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이번 공모전은 하나마나한 공모전이었다. 정해진 예산 가운데서 요건을 갖추면 선착순대로 주는 사업도 아니고, 열개 스무 개 팀을 뽑아서 마케팅 등 지원금을 나누어 주는 사업도 아니었다. 스타트업 경진대회였다. 이미 쟁쟁한 팀이 지원을 했을 것이고, 이런 공모전은 하나마나 하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의 사업이 비전이 없는 사업이어서가 아니라, 아직 눈으로 보이는 게 없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회사 직원인 내 시각과 회사 대표인 동생의 시각은 다르다. 나는 되는 일만 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동생은 가능한 일은 다 해본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을 수도 있고, 해서 안 하는 것보다 조금 더 얻는 것이라면, 일을 안 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게 경제적이라고 본다. 동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본다.


물론 과거 동생이 혼자 할 때는 동생이 다 했을 일을 이제는 내가 한다. 물론, 나는 회사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모르는 소스에 대해서는 동생에게 자료를 얻어서 한다. 일을 벌이는 것은 동생이지만,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피곤해졌다. 생각을 전환해 보기로 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던,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던, 나는 출근 시간 땡 하면 회사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 시간 땡 하면 덮고 퇴근하면 된다.


우리 회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야근이 없다. 시간 땅 대면 바로 퇴근한다. 시간 땅 대면 바로 퇴근한다고, 내가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말이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돌고 돌다가 집에 들어간다. 아내 에미마에게는 회사에서 늦게 끝났다고 말하고 말이다. 대개는 정시퇴근한다. 아내 스마트폰에 브런치 앱이 깔려 있어, 내가 글을 쓰면 앱에 알림이 뜨고, 가끔 아내가 브런치 앱을 들여다보지만, 한국어를 제법 잘해서 의사소통이 되는 아내지만, 이런 글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기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된다. 요즘에는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 아내와 뱃속의 아가와 놀려고 일찍 퇴근하는 것은 아니고, 빨리 집에 들어와 글을 조금만이라도 더 쓰다 자고 싶어서 가능한 일찍 들어온다.


우리 회사는 10시 출근 7시 퇴근이다. 6시까지 공모전 지원을 마무리 짓고, 한 시간 동안 다른 지점에 가서 정리하고 거기서 퇴근하려고 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거의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마감시간을 코앞에 두고 입력자료를 저장했는데, 임시저장까지만 되고 등록이 안 되었다. 등록이 안 되면 프로세스를 끄고 다시 시작하거나, 다른 프로세스를 열어서 마무리 지었어야 했는데, 안 되는 것을 계속 시도하다 보니까 끝에서 넘어가지가 않았다. 임시저장은 마감시간 전에 했지만, 완료가 되지 않아서 혹시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접수 완료를 확인했다. 월요일 저녁이라서 지점에 쌓아 두었던 쓰레기를 밖에다 내어다 둘 수 있어서, 쓰레기를 밖에다가 버리는 일까지 생겨버렸다.


6시에 공모전 지원 절차를 마무리 짓고, 한 시간 동안 지점으로 이동 정리하고 7시 땡 대면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며 빨리 퇴근해서, 오늘 써야 하는 글을 쓰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타임 오버가 되었다. 그런 데다가 일을 마칠 때 즈음 스마트폰이 꺼졌다.


화가 났다. 많이 나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 났다. 이 정도 일로 화를 내면 안 된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잠시 힘이 들었지만, 주변 거리를 구경했다. 스마트폰이 꺼지면 힘든 것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어서는 아니다. 지금은 모든 세상이 스마트폰에 다 들어가 있다. 스마트폰 안에 노트도 있고, 책도 있고, 카메라도 있고, 돈도 있고, 모든 게 스마트폰에 다 있다. 스마트폰이 꺼지면 나의 외장 뇌가 꺼지는 것과 같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마침 가지고 다니던 종이책이 가방에 있었다. 요즘은 종이책을 거의 사지도 읽지도 않지만, 꼭 읽고 싶은데 밀리의서재나 eBook으로 없을 때는 산다.


"에미마, 점심 먹었어?"


저녁을 먹으면서, 임신 중 밥하기가 힘든 날 늦게까지 점심을 못 먹고 있었던 아내가 기억이 나서 물어보았다.


"먹었어요.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어서 나가서 냉면 먹고 왔어요."

"냉면집 어디 있는지 알아?"

"우리 자주 가던 김밥집에서요."

"거기 냉면이 있어?"

"비빔냉면이요."


"오늘 오빠 생각했어. 오빠가 있었으면 밖에 나가서 뭐 사다 줬을 텐데. 힘든데 점심 먹으러 밖에 나가느라고 힘들었어요. 이런 날 오빠가 집에 있었으면 좋을 텐데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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