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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n 07. 2021

뚱뚱한 사람 고기 많이 먹으면 안 돼요

"에미마, 참치 있어?"


우리 회사는 10시에 출근해서, 7시에 퇴근한다. 7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9시가 넘을 때도 있다. 다른데 들리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오면, 대부분 9시를 넘길 일은 없는데, 보통 멀리는 아니지만 살짝 돌아 돌아 집으로 온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아주 나쁜' 남편은 아니지만, '아주 좋은' 남편도 아니다.


최근에는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 아내와 뱃속의 아가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날 갑자기 깊어져서가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서 이다. 올해 1월 말부터 처음 회사에 다닐 때는, 날 생각해 준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이었고, 집에 있다가 회사 다니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극심한 위기에 봉착했다. 내 안에 욕구에 눈을 뜬 것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바를 깨달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원하던 바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기 전에도, 아주 오래전부터,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해서 글로벌 도서시장에 판매하고 활동하여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야심 찬 꿈과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야망의 전설을 실제로 살지는 않았다. 그냥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실제로 업으로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글을 쓰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실제로 글쓰기에 불 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에 일찌감치 글쓰기의 불꽃이 붙었다면,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글을 써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다양한 활동을 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야망의 전설을 지금 쓰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불이 붙었으니, 지금 다 집어던지고 하고 싶었던 바를 해도 되는데,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조울증으로 오랜 기간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에게 기대어 살던 내가, 스스로 버는 월급의 맛을 보아서, 글을 써서 월급 200이나 연봉 2500 이상이 되지 않으면, 직장을 던져 버릴 수 없게 되었다. 뱃속의 아이까지 우리 세 가족이 지금 아주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딱 그 정도이다. 월 200 가지고 지금은 살아도 나중에 어떻게 사냐고 하는데, 동생의 사업에서 수익이 나올 때까지는 일단 최저임금을 받고 있고, 그 이후에도 처음에는 그 정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나중에 동생 회사가 잘 되면, 다른 직원보다 더 많이 생각해 주려 하지만, 회사가 어떻게 될지는 가봐야 아는 것이다. 작가로서 연봉 2500 정도만 되어도 거기부터 직업으로서 작가로 시작했으면 한다는 것이지, 끝에도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돈 때문에 작가가 되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작가라고 생각해서 작가의 길에 인생을 걸은 것이지만, 돈 때문에라도 작가가 되고 싶다. 시작은 심히 미약하여도, 나중은 심히 창대할 수 있는 길이, 작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글쓰기의 목표 중 하나는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지만, 나의 글쓰기의 목적은 순수문학적인 글쓰기보다는 대중문학적인 글쓰기이다. 쉽게 말해, '이상 문학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 장기간 수성'에는 관심이 많다. 글 써서 독자들의 마음도 울리고, 돈도 만지고 싶다. 글을 쓸 시간에 회사에서 글 쓰는 생각조차 못하고 일을 해야 하니,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일을 해보니 생각 이상을 내가 일을 잘했기 때문에, 일 자체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주 5일 하루 8시간 동안은 글쓰기와 글쓰기를 위한 생각을 박탈당하고, 그 시간에 일을 해야 한다는 게 대단히 스트레스인 한 주가 있었다. 그 시기를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글을 쓰는 것으로 타협했다. 남들 모두 그렇게 사는 것을, 나는 내 자의에서가 아니라, 조울증이란 고약한 오랜 친구로 인하여 타의로, 그렇게 살지 않았었기에, 남들 사는 것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나의 생각을 근무시간 동안 박탈당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물론, 나는 그냥 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해왔던 생각하기와 글쓰기 등으로 경제생활을 하려고 하던 차에, 동생에게 붙들려 회사에 다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낮에는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밤에는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로, 내 정체성을 정리한 후에야, 귀가시간이 빨라졌다. 아내와 뱃속의 아가와 놀려고 일찍 들어오는 게 아니라, 글을 쓰려고 집에 일찍 들어오게 되었다. 아내 에미마의 지혜로운 코칭도 있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싶었을 때, 아내 에미마는 "오빠, 7시 회사 끝나면 일찍 집에 와서 글 쓰면 되잖아."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또 아내는 3년만 딱 일하라고, 그동안 돈 모아놓고 3년 후에는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글만 쓰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아내 에미마는 내가 원하면 내가 집에서 글을 쓰고, 자신이 나가서 일하고 싶지만, 뱃속의 아가 때문에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상황도 되지 않고, 네팔에서 온 석사까지 공부한 아내가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일 외에는 현재로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또 내가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낮에는 회사에 집중하고, 밤에는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귀가시간도 빨라졌다. 아내가 많이 양보해 준 대신, 양보하지 않은 마지노선이 있다. 10시 반까지는 방에 들어가야 한다. 10시 반에 방에 들어가, 같이 가정예배를 드리고, 뱃속의 아가에게 태교동화를 아빠인 내가 읽어주고 자야 한다. 물론 내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많다. 쓰던 글을 끊고 방에 들어가는 기분은, 똥을 끊고 방에 들어가는 기분과 같은 기분이다. 방에 들어가는 시간이 늦어지면, 아내의 다크서클은 더 어두워지고, 우리의 따뜻했던 방의 공기에 한랭전선이 형성된다. 내가 아무리 낮에는 일을 하니까, 밤에는 글을 써야 돼 하고 세뇌를 해도, 아내의 타협점의 마지노선은 밤 10시 반이다.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고, 조울증을 조절하며 살아야 하는 나에게 충분한 잠이 최고의 보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장 7절)

"점심 때도 고기 먹었잖아. 그리고 거기도 고기 있잖아."


오늘 점심 불고기 백반을 먹었다. 고기를 먹으로 불고기 백반을 먹은 것은 아니고, 오늘 점심시간에 비가 뚝뚝 떨어져, 우리 회사 바로 위 식당에 갔다. 거기에서 가장 싼 메뉴가 6000원짜리 불고기 백반이다. 나머지는 회사 돈으로 점심 먹기에는 비싼 메뉴이다. 그래서 회사 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고기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회사 돈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가격에 맞추기 위해 불고기 백반을 먹는다.


내가 오는 시간에 아내는 교회 식구들이 줌으로 하는 성경 읽기에 참여하기 때문에, 아내가 차려 놓은 식탁에 가서 내가 알아서 먹는다. 얼마 전까지는 내가 올 때마다, 아내가 줌을 중지하고 나에게 와서 식사의 시중을 들어주었는데, 이제는 아내는 교회 줌 화상 성경 읽기에 집중하게 하고, 아내가 차려 놓은 음식을 내가 알아서 차려 먹는다. 오늘 아내가 차려 준 반찬에도 고기가 있었다. 어제 먹다 남은 고기가 많지 않게 조금 있기는 했지만, 점심도 고기를 먹었고 저녁에도 고기반찬이 있다고 아내 에미마는 "오빠, 참치는 내일 먹으면 되잖아." 그런다.


참치가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내 건강이 걱정돼서 그런다.


"오빠! 뚱뚱한 사람 고기 많이 먹으면 안 돼요."


그렇게 말하다가, 참치를 찾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거실에 나와서 말한다.


"오빠, 참치 먹고 싶으면 먹어."


먹지 말라는 이야기다. "아니,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 아내가 차려 준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


"오빠, 참치는 내일 차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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