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Jun 02. 2021

여행을 안 좋아할 리 있어? 돈이 없어 못 가지.

"에마마! 에미마는 여행 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집이랑 동네에서 노는 거 좋아하고. 어쩌다 가야 재밌지, 자주 가면 힘들지?  그지?"


아버지 생신을 축하드리기 위해 주말에 논산 시골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가 아내에게 한 질문은 우리가 '디지털 유목민' 과가 아닌 '디지털 정착민' 과라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안 좋아해? 좋지."

"그럼 요즘 왜 가자고 안 해?"

"돈 없으니까 그렇지."


아내 에미마가 수줍게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우문에 현답을 한다.

"오빠는 또 '냄비'해요."

"'낭비'해요."

" 없는 사람 '냄비'하지 마세요."

"응. '낭비'하지 않을게요."


쓸데없는데 돈을 쓰것은 아니. 먹고 싶고, 마시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돈이 없어도 어떤 식으로든 산다. 먹고 싶은 것은 길거리 오뎅 떡볶이 순대 정도이고, 마시고 싶은 것은 스타벅스도 아니고 2000원 하는 메가커피 아메리카노이고, 가지고 싶은 것은 읽고 싶은데 밀리의 서재나 eBook으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책 정도이다. '어떤 식으로든 산다'는 것은, 카카오톡으로 나에게 선물하거나, 스마트폰 소액 결제를 통해 지른다. 교보문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그런 식으로 종이책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카카오톡에서 교보문고 기프트카드 1만 원 권을 사고 싶은 책의 가격에 따라 한 개에서 두 개를 나에게로 선물하기로 지른다. 결제는 스마트폰 소액결제로 하고 말이다.


아내 에미마 짠돌이나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최소한으로 소비해야 한다는 경제적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고, 다만 우리 경제 형편에 맞추어 분수에 맞는 소비를  뿐이다. 나는 돈이 없어도 필요하면 지르고 보고, 아내 에미마는 필요해도 돈이 없으면 참는다.


아내 에미마도 청춘인데,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좋은 데 가서 재미있게 놀고, 즐거운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리가 없다. 우리가 아직 그만한 형편이 안되니 최소한으로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밀리의 서재에서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와 이원 생중계로 북토크를 했다. 밀리의 서재 회원은 밀리의 서재 앱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전국 16개 CGV 극장에서도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코로나로 심심하게 집에만 있는 아내 에미마에 콧바람을 씌어 주고 싶어서 우리의 사연을 써서 밀리의 서재 초청 이벤트에 압구정 CGV 극장으로 응모하여 초청을 받았다. 압구정 CGV는 박경림이 MC로 나오는 본 행사장이었다. 전국의 다른 CGV 상영관에서는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개봉 영화 관람하듯 보는 것뿐이었다.


초청 이벤트 안에 선물 이벤트가 있었다. CGV에 직접 나온 참석자 가운데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프랑스 자택에서 세 명을 추첨하여 경품을 주었다. 1등 아이패드 2등 파라다이스시티 1박 투숙권 3등 에어팟이었다. 경품 추천 방식의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중대한 진행 미스가 있었다. 3개의 박스를 준비해서, 한 박스에는 상영관 이름이 들어 있고, 다른 한 박스에는 좌석의 열 알파벳이 적혀 있고, 나머지 한 박스에는 좌석 번호가 들어 있었다. 예를 들어 베르나르 작가가 세 박스에서 각각 '춘천'과 'K'와 '11'을 뽑으면 이를 합쳐서 'CGV 춘천 K11' 석이 당첨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세 개를 합친 자리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게 성립이 되려면 전국 16개 CGV 상영관이 만석이 되어 있어야 했다. 압구정 본 행사장도 텅텅 비어 있는데, CGV의 다른 지점 상황은 안 봐도 비디오다.


결국은 전국 16개 CGV에 나온 참석자 가운데서, 밀리의 서재 SNS에 소감을 적어주면 3명을 뽑아서 선물을 주기로 했다. 나는 밀리의 서재 인스타에 네팔아내 에미마와 나의 사연을 간단하지만 간절하게 소감을 남겼고 파라다이스시티 1박 숙박권에 당선이 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밀리의 서재 인스타에 남긴 우리의 사연이 담긴 소감이 인상이 깊었을 수도 있다.



큰 마음먹고 호캉스를 간다 해도, 우리 돈 주고 갈 수 없는 급의 호텔이었다. 파라다이스시티에서 1박 2일은 호텔 이름 그대로 파라다이스였다. 아내 에미마는 매우 즐거워했고 행복해했다. 값비싼 호텔에 묶어서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돈 값을 하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재미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도 그 돈을 주고 저기 호텔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돈으로 다른 의미 있는 소비와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 에미마가 매우 행복했던 하루였지만, 남의 보내 주었으니 갈 수 있는 체험이었다. 만약에 우리 돈을 그만큼 내고 갔었더라면, 아내 에미마는 그렇게 즐겁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내 에미마가 돈을 쓰는 것을 절제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 아내가 돈 쓰는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다.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내와 우리 아이에게 돈 쓰는 재미를 주기 위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 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글쓰기를 업으로 하며 살아가기 위해 밤에는 글을 쓴다. 글쓰기가 업이 되고 돈이 되어 아내 에미마와 우리 아이에게 돈 쓰는 재미를 주고 싶다.

이전 07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던 낭만소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