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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an 01. 2022

빛나는 글을 쓰면, 내 글과 인생도 빛을 보지 않을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9년 8월 네이버 블로그였다. 기억력이 좋은 게 아니라, 블로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글의 작성일자가 2019년 8월 23일이다. 과거는 기억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남겨진 기록으로 기억된다. 지금의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2019년 8월이었던 것이지, 사실 글을 쓰고 작가가 되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보다 아주 오래전이었다. 그 이전에도 네이버와 다음의 블로그와 티스토리에 수없이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숱한 시행착오 가운데 지금의 글쓰기를 시작했다.





2015년 3월이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쓰시는 고도원 작가님께서 충주에서 하시는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옹달샘>에 갔다. 2014년 가을 조울증이 재발했다. 2000년 스물한 살 나의 조울증 인생이 시작한 이후, 가장 큰 위기였던 2009년 가을 이후, 두 번째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강제입원을 당하고, 조울증이 진정이 된 이후에, 퇴원을 했다. 조울증 증세는 진정이 되었지만, 청년의 때의 꿈을 잃고, 집에 콕 박혀 TV 보고 인터넷 하며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치료가 필요한 시간을 지나, 치유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2020년 2월 <옹달샘 자서전 쓰기 워크숍>에서


둘러앉아 마음을 나누는 시간에, 어찌어찌하여 내가 지은 시를 읊고 그 시로 만든 자작곡을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삶의 이런저런 사연을 나누게 되었다. 옹달샘 시인이 되었다. 프로그램이 마칠 때가 되어 꿈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조울증으로 꿈을 잃어버렸는데, 글로 독자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나누었다.



물론,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08년 봄학기 타과인 국어국문학과의 <시쓰기의 탐색>과 <소설 쓰기의 즐거움> 수업을 들었다. 같은 학기 국어국문학과의 <한국현대문학사상>과 <국어방언학의 이해>라는 수업도 들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문학청년이었던 것 같다. 조울증으로 인한 방황으로, F 몇 개나 학사경고 정도가 아니라, 몇 학기를 통째로 ALL F로 날렸던 아마도 학과에서는 전설로 남아있을 내가, 타과 수업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한국현대문학사상>은 그렇다 치고, 국어국문학과로 전과하거나 복수 전공할 것도 아니면서 <국어방언학의 이해>는 왜 들었을까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소설을 쓸 때 지방 사투리를 맛깔나게 쓸 수 없나 공부하려고 딴에는 들은 것이다. 물론, 수업을 듣고 나니, 그것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수업이었다. 국어국문학과도 아닌데, 팀플로 팀을 만들어 방언을 채집하러 시골 할머니들 만나러 다니는데 고생 많이 했다. <시쓰기의 탐색>이나 <소설 쓰기의 즐거움>은 문예창작 수업이지만, 수업 제목 그대로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입문 수업이기 때문에 심화과정은 아니었다. <한국현대문학사상>는 한 사람 당 한국 현대 문학가 중 소논문을 하나씩을 써서 발표하는 수업이었고, <국어방언학의 이해>는 과제로 시골로 방언 채집하러 다니는 수업이었는데, 두 수업 학점 따느라고 피똥 싸는 줄 알았다. 나의 글쓰기 인생에 사실 거의 도움이 안 되었기는 하지만, 그때 나는 작가병이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위 시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의 최초 버전을 지은 게 2000년으로 기억하니, 사실 그보다 아주 이전에도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일기 쓴 것과 백일장 나가서 상 탄 것은 타의에 의해서 한 것이니, 그것을 가지고 그때부터 글 쓰기 시작했다 말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의 글 쓰기의 시작은, 2016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된 짝사랑이었던 첫사랑 소녀에게 쓴 보낸 그리고 보내지 못한 수많은 편지들로부터 였다. 사실상 나의 글쓰기는 연애편지로부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9년 8월 네이버 블로그였다. 2020년 10월 12번 떨어지고 13번째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내가 글을 쓰는 메인 플랫폼은 브런치가 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연합뉴스 TV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블로그에서 우리 부부 예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했다. 글을 잘 써서 만은 아니고, 그 프로그램이 다문화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찍는 프로그램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가가 연합뉴스 TV 소속은 아니고, 외주 제작사 소속으로서 연합뉴스 TV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블로그에 글 쓴 지 2개월 만에 TV 탔다.



원래 15분씩 4주 동안 방영되는 4부작이 예정이었는데, 방송이 되는 중에 우리의 첫아기가 유산이 되는 바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을 병원 가서 확인한 기쁨을 찍었던 장면 등이 통편집되고, 그 상황에서 방송을 길게 갈 수 없어서 3부작이 되었다.





2019년 말 네이버 블로그 16주년 기념 이벤트가 있었다. #소원을말해봐라는 블로그 포스팅 이벤트였는데, 소원하는 것에 관한 포스팅을 선정하여 1등에게 네이버 포인트 200만 원을 주는 이벤트였다. 사실 나는 현금 200만 원을 주는 줄 알고 참가했다. 200만 원을 타려면, 2000만 원 이상의 소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제를 <아내 에미마와 아내의 고향 네팔에서 한 달 살기>로 정했다. 200만 원을 타면 아내의 고향 네팔에서 1달을 사는데 시드머니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비행기 값 정도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200만 원을 타기 위한 목적보다, 200만 원 상금의 글쓰기 이벤트에 당선되었다.


진정성이 통하고 감동이 있어서 당선되었겠지 싶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내가 썼지만 잘 썼다. 내 인생을 포스팅 하나에 전부 갈아 넣었다. 사실 이 글 하나 자체는 오래 쓴 것은 아니다. 두 시간 정도 쓴 것이다. 글 하나를 두 시간 정도 쓰면 짧게 쓴 것은 아니지만, 저 정도의 글을 두 시간 만에 쓰고, 또 두 시간 글 써서 200만 원을 탄 것이니 말이다. 물론 현금 200만 원은 아니었고, 네이버 포인트 200만 원이었다. 네이버 쇼핑에서만 쓸 수 있는, 현금으로 전환이 불가능한 네이버 페이였다. 그러니 애초에 네팔에서 한 달 살기는 커녕, 우리 둘 비행기 티켓도 살 수 없는 이벤트였다.


다시 읽어 보어도 200만 원 탈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될 때는 괜히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몰랐지만, 이유가 있어서 되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딱 한 번 다음 메인에 올랐는데, 나는 가볍게 써는데 다음에서 작가 된 지 처음 안 된 사람에게 사기진작 차원에서 메인에 노출해 주지 않았나 만 생각 했는데, 다시 읽어 보면 별 것 아닌 글 같아도 나름 다음 메인에 탈만한 이유는 있었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초창기 글이라 라잇킷 숫자도 얼마 없고, 댓글도 없는 글이지만, 지금까지 8875명이 본 글이다. 물론, 이게 다음 메인에 탄 바로 그날 며칠 조회수가 터지다 만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다음 메인에 타고 조회수가 폭발한 것이 구독자 수나 공감과 댓글로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회수가 폭발했지만, 나의 브런치에는 아무 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별 의미 없는 노출이었다.


사실 이 글은 터지라고 의도하고 쓴 글도 아니고, 터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글도 전혀 아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렇게 돌아보면, 터졌던 것이 그저 우연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짧은 글이었지만, 터질만한 이유는 나름 가지고 있는 글이었지 싶다.





나의 글쓰기 인생의 나름 크고 작은 성공의 경험이다. 또 하나의 글쓰기의 성공 경험이 있었다. 2020년 7월 밀리의서재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학살롱>이라는 이벤트를 했다. 코로나라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직접 한국으로 초청을 할 수 없으니까, 전국의 주요 CGV 영화관과 프랑스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이원 생중계 토크쇼를 했다. 그중의 일부가 신청을 통한 초대장을 받았다. 압구정 CGV에서 박경림 사회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이원 생중계로 토크쇼를 하면, 전국의 CGV와 인터넷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이벤트였다. 나는 코로나로 집에만 있는 아내 에미마에게 콧바람이나 씌어 주려고, 박경림이 직접 사회를 보는 압구정 CGV 지점으로 신청을 했고,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방청권을 얻게 되어 가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문학살롱> 이벤트 안에 이벤트가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세 명을 추첨하여, 아이패드 프로, 에어팟 프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숙박권을 주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진행팀에서 추첨 이벤트를 쫄깃쫄깃하게 재미있게 하려다가 진행미숙으로 인한 치명적인 사고(?)가 났다. 통 하나에 모든 추첨권을 담아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뽑은 것이 아니라, 통을 세 개를 분리해서, 통 하나에는 전국의 압구정 춘천 수원 같은 CGV 영화관의 이름, 통 하나에는 A B C 같은 열의 이름, 통 하나에는 1 2 3 같은 좌석의 이름을 담았다. 그래서 각 통에서 하나씩 뽑은 세 개가 합쳐서 된 좌석이 당첨이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찬 자리보다 빈자리가 훨씬 많았고, 아무리 뽑아도 합쳐도 당첨자가 안 나온 것이다. 그런데, 상품이 큰 상품이라, 밀리의서재 측에서도 안 줄 수도 없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차후에 참가자 중에 선정하여 주겠다고 했다.



결국 밀리의서재 SNS에 댓글 후기를 남기면, 추첨하여 아이패드 프로와 에어팟 프로와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숙박권을 주기로 했다.



밀리의서재 인스타그램에 댓글 하나 달았다. 그리고, 파라다이스시티 1박 2일 숙박권을 탔다. 나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그렇고,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댓글 보고 밀리의서재에서 뽑아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품 세 개 중에 파라다이스시티 숙박권을 준 것도 사연을 보고 준 것으로 생각한다.



파라다이스시티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였다. 아내 에미마는 그 하루를 너무 재미있어했다. 그렇지만, 그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를 아내 에미마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다. 누가 초대해주면 몰라도,  돈 내고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내 에미마와 만들어 먹는 계란 후라이를 얹은 짜파게티가 있는 우리 집이 우리의 파라다이스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저 하늘 위에 파라다이스에 가고 싶은 소망은 있어도, 우리 돈 주고 다시 저 인천 영종도의 파라다이스에 가고 싶은 생각은, 그닥 없다. 누가 우리를 다시 초대해주면 요한이랑 같이 가서 하룻밤 재미있게 놀다 오겠지만, 우리 돈 주고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의 글쓰기 인생의 크고 작은 성공 경험들을 돌아보면, 그 당시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썼던 글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글들이 크고 작은 성공들을 불러온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처음 글 쓸 때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의 글에 혼을 담고 싶다. 나는 글을 면, 내 글과 내 인생이 덩달이 세상에 빛을 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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