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Sep 03. 2022

모로 가도 화서역


어머니께서 잠시 수원 집에 일 보러 올라오셨다. 어머니께서 논산에서 수원에 보러 오신 일이란 손자 요한이 미끄럼틀을 당근마켓에서 사서 집에다 가져다주시기 위해서였다.
    

어젯밤에 내려가시려다가, 오늘 우리 부부 점심 식사 데이트하게 손자 봐주신다고 일정을 미루셨다. 아내 에미마는 아내대로, 요한이 어머니께 맡기고 나가면 어머니 힘들다고, 어머니 점심식사 차려드려야 한다고, 안 나가려 했다. 에미마는 좋은 아내며 착한 며느리다.

    

마침 내가 요한이에게 옮았는지 피부에 수족구 증세가 있어, 어머니께서 에미마랑 피부과 갔다가 놀다 오라고 내보내셨다.


"기사님, 여기서 내려주세요."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세요."

"화서역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내려주시면 안 되나요?"

"정류장에서 내리세요."


집 앞 정류장에서 수원역을 향하는 버스를 타고 버스가 출발했다. 우리가 탄 정류장 전 정류장에서 내렸어야 할 승객이 목적지로부터 더 멀어졌다. 아주 오래전에는 승객이 내려달라면 아무데서나 내려주었는데, 지금은 정류장에서 일단 조금이라도 출발하면 안 내려준다.

    

"다음 정거장 내리셔서 길 건너서 화서역 가는 버스 타세요."

내가 한 말이었다. 길 건너 정류장에는 온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다.

    

"다음 정류장 내려서 택시 타세요."

옆에 있는 다른 아주머니의 말이다. 오답은 아닌데, 길 건너 버스를 타면 되는데, 택시는 왜 부르나 싶었다.

    

"이거 수원역 가는 버스죠? 저 그럼 수원역 가서 화서역까지 전철 타고 갈게요."

수원역 환승 버스 정류장 바로 거기에서 왔던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바로 타면 되는데, 수원역까지 가서 전철로 화서역까지 가는 것도 오답은 아니다. 

모로 가도 화서역만 가면 되니 말이다.


사람마다 가진 인지 지식 정보 등의 영역이 저마다 다르다. 내가 익숙한 길로 가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바로 내려서 횡단보도 건너서 화서역 가는 버스 잡아타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빠르고 경제적인데 말이다. 조금 더 가서 수원역에서 화서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고 말이다. 다만 이 중년 여성 승객이 잘 아는 길이 수원역에서 화서역으로 가는 전철이었지   싶다.


모로 가도 화서역만 가면 되니 오답이 아닐뿐더러, 수많은 정답 중 하나다. 인생의 문제는 수능 문제와 달라 다섯 개 중 하나를 찍는 것도 아니고, 답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쁘고 귀여운 막 돌 아들 요한이도 내 마음 같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