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사랑과 결혼을 포기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은 곧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의 끝이 보이지 않았기에, 결혼은 사랑의 종점이 아닌 경유지이었을 뿐이었다.
사랑에 계속 모든 것을 올인했다가는 사람답게 살지 못할 것 같았다. 나를 사랑하고 결혼할 여자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내 삶을 살다가 스쳐가는 인스턴트 사랑이나 하면서 살기로 했다. 가는 사람 붙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 생각은 다르셨다. 기독교 신앙이 깊고 사랑이 많은 여자를 만나 사랑으로 살면 내가 회복될 것이라 생각하셨다. 부모님께서는 오래전 네팔에 봉사활동을 다녀오셨던 둘째 고모에게 네팔의 고모 지인을 통해 믿음 좋고 사랑이 많은 자매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고모의 지인은 네팔에서 오래 거주해오신 한국분인데, 자신이 친딸처럼 생각하는 훌륭한 자매가 있다고 하셨다. 아내 에미마였다.
어머니께서는 그쪽에 나를 소개할 때, 나의 아픔과 현재 상황을 모두 솔직히 전달하셨다. 에미마는 자신이 나를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시리라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랑 결혼하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소개를 듣고, 에미마는 기도를 하고, 나는 생각을 한 후에, 결혼할 마음을 확정한 후에, 카카오톡으로 온라인 데이트를 했다. 2018년 5월부터 카톡으로 데이트를 하기 시작해서, 그해 9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처음 만나 양가 부모님과 함께 약혼식을 하고, 그해 12월 네팔에서 결혼식을 했다. 속전속결이었다.
사랑은 다른 것과 달라서, 대개 어려운 사랑보다 쉬운 사랑이 좋다. 에미마랑 만날 때 나는 이미 더 이상 사랑에 인생을 걸지 않았다. 내 삶을 살려고 했다. 병원도 잘 다니고, 약도 잘 먹으며, 조울증도 어느 정도 조절을 했다. 그럴 즈음 에미마를 만났다. 에미마를 만나고 나서 나는 조울증을 극복했다. 약을 끊고 완치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약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회사에 다니며 돈 벌면서, 보통사람들처럼 별일 없이 산다.
사랑이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지개를 찾아 헤매다, 2030 청춘의 모든 것을 잃고, 인생 너덜너덜해졌지만, 결국 내가 인생에서 꿈꾸던 유일한 하나였던 사랑을 만났다. 사랑의 끝에서 마침내 만난 마지막 사랑이 아내 에미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