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수원고용센터를 찾아갔다. 취업 상담을 받고, 국비지원으로 취업 훈련을 받았다. 취업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생산적인 활동에 적을 걸어놓고, 그 사이 책 한 권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전업작가가 될 작정이었다.
출판편집디자인 과정이 기대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고, 수원에서 강남까지 출퇴근하면서 하루 8시가 주 5일 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취업 훈련을 마칠 때 즈음되니, 취직해서 돈 벌 의지가 돌아오기도 했다. 없던 일할 의지가 생기게 하는 것도 직업훈련의 효과 중 하나다. 이력서를 뿌렸지만, 면접 보러 오라는 데는 한 군데도 없었다.
"형. 형도 이제 아기가 생겼으니 돈이 필요할 것이고. 나도 회사가 커져 직원이 필요하니. 와서 일해."
"응."
그때는 이미 취업불가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구직의 마음을 접은 후였다. 집주소로 1인출판사 사업자등록을 내고, 책을 써서 직접 만들어 팔기로 했었다. 나는 다른 인생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생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은 '응.'이었다.
그렇게 어쩌다 회사원이 되었다. 한 달 벌어 우리 가족 한 달 버는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좋고, 근무 시간 내에는 의식 흐름을 잠시 멈추고 회사 일을 해야 하는 게 힘들다. 아직 작가로서 경제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의 메인 정체성은 작가다. 생활을 위해 생각을 멈추어야 하는 현실이 작가 정신을 가지고 사는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과 휴일에는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놀고, 틈틈이 글을 쓴다. 내 안에 불가피하게 분열된 세 가지 다중자아로 인해 내적 갈등에 대한 현재 시점에서 나의 공식적인 타협안이다. 생각은 그렇게 타협했는데, 행동이 그렇게 따라가지는 못한다.
꾸준히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으며,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의 사랑으로 조울증을 극복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들다. 아직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 못하며, 그 길의 끝이 희미하게라도 보이지 않는다.
조울증은 극복했지만, 조울증으로 2030 청춘을 잃어버렸고, 아직 세상에 내 자리 하나를 잡지 못했다. 내 자리 하나가 있다면, 내가 원하는 그 자리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지 못한 채, 여전히 세상에 끌려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