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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05. 2020

철원 고모댁에서 김장 2일 차

어제 하룻밤 절여 놓은 배추를 씻어, 각종 양념을 하여 아내 에미마의 첫

어제는 배추에 칼집을 내어 소금으로 절였다


어제 아내 에미마와 철원 둘째 고모 댁에 왔다. 매년 고모 댁에서 김장을 할 때, 어머니께서 고모에게 우리 집 김장도 부탁해 왔던 것 같다. 고모께서 우리 어머니께 올해는 나와 아내 에미마를 김장할 때 보내 달라고 하셨다. 어제 일찌감치 철원에 도착해서 고모의 김장을 도와 드리기 위해,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전철과 시외버스를 타고 철원 와수리에 오전 10시에 도착했다.


와수리는 중소도시의 읍내 느낌이 나는 동네인데, 그 근처 부대의 군인들이 외출 외박을 나와서 노는 그 동네 나름의 번화가이다. 철원의 부대가 최근의 포천으로 많이 빠져나가서 그렇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와수리도 많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코로나 정국에서 휴가는 보내주겠지만, 외출 외박은 안 내보내 준다고 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 경제가 어렵고, 수원 화서동의 우리 동네에서 어머니의 코다리 단골집도 문을 닫았는데, 고모 댁이 있는 와수리의 경제도 상당히 좋지 않다고 한다. 


어제는 일찍 점심식사를 하고,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배추김치에 들어가는 각종 채소를 씻고 잘라 놓았다. 배추는 오늘 오전까지 하루를 절여 놓았다.




철원 고모댁에서 김장 2일차


오늘은 하루 밤 절여 놓은 배추를 물로 씻었다. 두세 번씩 씻어서, 평상에 널어놓았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동네 할머니들 몇 분들 모셔서 미리 준비해 둔 양념과 속재료로 배추김치를 버무렸다.


고모와 아내 에미마가 주로 하고, 나와 고모부께서 힘쓰는 일을 하면서 보조하였다. 나도 최선을 다하여 김장을 도왔지만, 아내 에미마가 제일 수고가 많았다.


고모와 아내의 김장을 도우며, 쉬는 시간 스마트폰으로 블로그와 카페 등지에 글을 썼다.




추석 때 장염과 맹장수술로 1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김장을 하느라 밥해 먹기도 힘들기 때문에, 어제저녁은 피자를 시켜 먹었고,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잔치국수를 해 먹었고, 저녁식사는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과 새우볶음밥을 먹었다. 네 명이서 각각 식사 하나 씩과 요리 하나를 시키니, 만두는 서비스로 주었다. 


배부르게 먹었다. 올해 추석이 있던 주간에 장염으로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입원해 있었는데, 내 장이 평소에도 예민한 것 같다. 지금도 밥을 조금만 많이 먹으면, 배가 아파 화장실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처럼 주기적으로 설사를 하는 것은 사라졌다. 확실히 좋아졌기 했는데, 지금도 밥을 많이 먹었다 하면, 화장실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바로 표시가 난다.


식사를 하면서 고모 내외 분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 고모 고모부는 내가 에미마와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잘 쓰면 그것이 좋은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고모 고모부께서 말씀하신 일들이 지금 내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이었다.




브런치 작가에 12번 떨어지고, 13번째 합격하다


작가가 되어야지 하고 뜻을 세웠던 것은 2015년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글을 써왔고, 대학 때 과 전공 수업 외에도 타전공인 국어국문과의 문예창작 수업을 듣기도 했고, 서점에 나온 핫한 책들은 바로 사서 보고 이런저런 습작도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2015년이었다.


그때 나는 바로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가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그동안 해야 할 일들을 찾았다. 돌아보면 내가 조울증과 조울증의 재발로 인한 경력단절로, 멀쩡한데도 직업으로서 할 일이 마땅히 없었다. 동생과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기는 했지만, 그것은 직업이 아니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2015년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도서관 문 열 때 도서관에 출근해서, 도서관 문 닫을 때 도서관으로부터 퇴근했어야 했다. 그때도 나는 바로 작가가 될 생각보다, 작가가 되기 위해 할 일을 찾았다. 사실, 마땅히 할 직업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아내와 부모님과 친척들과 주변의 이웃들의 나의 글쓰기가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다만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기 전에 취업을 했으면 하고 바라시거나, 아니면 직업이 아니더라도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듣는다. 구구절절이 맞는 이야기이지만, 올해 직업훈련을 받고 구직활동을 해 보고 여러 길을 찾아본 결과, 취업불가 창업 불가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기까지 할 직업도 아니고, 글을 쓰기 위한 어떠한 특별한 경험들이 아니다. 지금 바로 작가로서의 사는 시간이 필요로 하다. 이제는 작가가 되기 위해 뭘 하려고 하기 보다도, 작가의 본업인 글쓰기에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했다. 나이 마흔 하나에 아직도 현실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브런치북이자, 나의 첫 번째 책의 초고.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다. 합격이 되지 않더라도 편집과 퇴고 보완을 거쳐 출간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은 책을 내기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첫 번째 책의 초고를 썼고, 그 초고를 바탕으로 출간할 수 있는 양과 질의 책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또한 두 번째 책을 위한 글들을 하나씩 써 가며 쌓아가고 있다.


첫 번째 책을 내면, 바로 두 번째 책을 쓰기 시작할 것이고, 두 번째 책이 나오기 시작할 때는 세 번째 책을 시작할 것이다.


어떤 브런치 작가들은 작가 도전 한 번 만에도 바로 작가 승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12번 떨어지고 13번째 작가에 합격했다. 어떤 브런치 작가들은 글 한 두 개 쓰고도, 바로 다음이나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서, 수천 명의 조회수와 구독자 수로 이어지는데, 많이는 아니지만 매일매일 한두 개 이상의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반응은 없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나는 순간순간 구독자 수와 라이킷 수를 확인하게 된다. 다만,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은 내 글들을 꾸준히 읽어 주시는 구독자 분이 여러 분 계시다는 것이다. 나의 구독자 분들 가운데 몇 분들은 구독자도 엄청나게 많으신 출간 작가들도 계신다.


매거진에 처음 글을 썼던 때의 반응만큼 나오지 않거나, 시간이 지나감에도 아직까지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생각만큼 상승하지 않아서 마음이 우울해질 때도 있지만, 지금은 반응과 상관없이 매일매일 글을 써 가고 있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내 글들과 글쓰기 능력도 독자들이 사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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