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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finder Nov 16. 2019

마시멜로 긁어내기

다시 쓰는 마시멜로 이야기

마시멜로는 내 삶을 잡아먹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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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였나, 당시 유명했던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었다. 유명보다 유행이라는 말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당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마시멜로 이야기의 메시지는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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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한창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나는 마시멜로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했다. 책 읽고 피아노 치는 것, 음악을 배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것들에 감히 하루 속 지분을 내어줄 수가 없었다. 그런 “사치”들은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해야 한다고, 그때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굳게 믿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 이외에 다른 활동을 철저히 배제했던 내가 고등학교 1, 2학년의 시간을 교내 합창단을 하며 정기연주회를 준비했는데, 공부가 더 급하다는 생각에 마음에 타 들어갈 때가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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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의 나는 대학생이 된 내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대학교 1학년 때 공부도 아닌 과외를 하느라고 밥도 못 먹고 뛰어다닐 줄 나는 짐작이나 했을까. 고등학교 때의 시간은 공부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대학생의 시간은 말 그대로 돈이었다.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확실한 가치창출 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하기엔 그저 매달 빠져나가는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음악과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아쉬움을 대학 음악 교양 수업 수강으로 달래야 했다.




아직도 마시멜로는 내 삶을 압박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 것들, 이를 테면 글쓰기를 쉽게 사치로 간주해버리고 “너는 지금 그것을 할 때가 아니라”며 고함을 지른다. 우리 삶에서 끈기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마시멜로가 가지는 의의 자체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내 삶에 이미 너무 깊숙이 박혀 버린 마시멜로는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일들을,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보다 높은, 절대우위에 놓음으로써 나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내 삶을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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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끈끈하게 눌어붙어 버린 마시멜로를 조금씩 긁어 내는 중이다. 화음의 아름다움에 전율을 느꼈던 고등학생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기 않기에.


지금 당장 하고 싶다고, 영혼이 외치는 일들을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로 던져버리지 않겠다고 오늘도 나 자신에게 굳게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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