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어려운 사람이 시를 읽는 법
감수성이 풍부해야 시를 잘 읽을 수 있을까요? 저에게 시란 여백이 많은 글 정도였어요. 시를 호로록 읽고 시집을 후루룩 넘기곤 했습니다. 최근에 안희연 시인이 쓴 산문집 <단어의 집>을 읽고 처음으로 시인에게 단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 이후로 저도 시를 읽고 싶어 졌습니다. 책 장에서 어쩌다가(?) 사놓은 몇 권의 시집이 있습니다. 그중 한 권을 골라 찝히는 대로 페이지를 펼쳐 시를 읽습니다.
읽고 또 읽어보는데요. 아무 느낌도 안 와요.
천천히 읽어보자.
단어 사이의 공간과 행간의 여유를 여운의 자리로 채워보려고 하는데 잘 안돼요.
이것은 다 교육 탓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는 억지로 외워야 했던 짧은 글에 불과했으니까요. 얼마나 싫었으면 짧은 글이라서 외우게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흥미보다 의무적으로 하다 보니 결국엔 국어 시간이 싫어졌습니다. 이러할진대 제 문학적 감수성이 좋을 리는 남무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책을 안 읽었나 봅니다.
과거는 과거고요. 어쨌든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다시 읽어보려고요.
읽다가 읽고 또 읽고 그러다가 다시 또 읽다 보면 어느 날 유레카를 외치는 날이 오겠지요.
조급하게 굴지 않고 읽고 또 읽어보려고요. 짧은 글이라 재독에는 무한대로 자신이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인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 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선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을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오늘 선택한 시는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입니다. 시를 이해했다기보다 여러 번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어요. 박준 시인이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쓴 적이 있나 보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 사람의 객관적 정보들만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어떤 감정과 생각이 모이게 되고 그것들이 한 문장, 한 문단, 한 편의 글로 되는 아름다운 과정을 시로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글을 쓰면 관계가 달라지나 봐요. 그래서 우리가 써야 하나 봅니다.
다른 날, 다른 시간에 다시 이 시를 읽으면 어떤 느낌이 궁금합니다.
아무튼 저는 시를 좀 계속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