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빨리 해가 진다

그때의 기록

by 임다희

오피스텔 창문 너머로 우산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겨울비가 오는구나를 알아채고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오전에 끝낼 줄 알았는데, 온종일 대형 출판사 중 한 곳의 마케터와 메일을 주고받았다. 출판사 마케터라면 글자에 예민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사뭇 달랐다. 출간될 책 제목 오타부터 확인해 달라는 첨부파일은 누락됐고 수정 요청한 것 중에는 반영되지 않은 채 메일로 보내왔다. 한 번에 보낼 만한 메일은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졌다. 편집자가 아니라서 덜 예민한 걸까? 시답잖은 배려를 상상하며 그녀의 메일을 확인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고, 업무 소통은 이번이 처음이니 그냥 그려려니 했다. 다시 수정 요청 메일을 보냈더니 꼼꼼히 살펴봐 줘서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실수가 잦아도 본인의 실수에 대한 인정은 빠른 분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케터의 마지막 메일을 끝으로 근무 마감했다. 그리고 본 하늘은 새까맸다. 저녁 7시쯤 됐나 싶어 컴퓨터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시계를 봤더니 오후 5시 16분이다. 이렇게 해가 짧아진 건가? 녹색 창을 열어 일몰 시각을 검색했다. 서울은 2분 전에 해가 졌고, 일몰의 불그스름한 태양 빛은 비구름으로 더 급히 가려지고 말았다.




서울의 해는 07시 37분에 떴고 17시 14분에 졌다.

말 그대로 낮보다 밤이 긴 사절기인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어제는 비가 왔고 오늘은 눈이 왔다. 하얀 세상으로 바뀔 만큼 기온이 낮은 건 아니었다. 휘날리며 내리던 눈은 벌써 녹아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분명 존재했었는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흩날리는 눈발을 한동안 응시하면서 나도 눈발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라지고 싶은 걸까 아니면 눈발처럼 가벼워지고 싶은 걸까. 겨울바람에 휩쓸리다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사라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은 것뿐이다.



한 달에 두어 번씩 꼭 찾아오는 우울감과 무기력은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나에게 왔다. 또 왔구나 하고 심드렁하게 상대하곤 하는데, 이번 달에는 좀 오랫동안 머물다가 가려는 모양이다. 진한 초콜릿이 듬뿍 올라간 디저트나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터지는 과일을 먹어도 별 소용이 없다. 추운 날씨 덕에 살짝 올라간 흥분마저도 금세 가라앉힌다. 그래서 모든 게 시들하다.



겨울바람은 이리저리 매섭게 부는지 오피스텔 창 너머로 쉬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울하기 딱 좋지 하는 소리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