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엔 바다에 가야지

수영도 못하는 내가 난생처음 서핑에 간 날

by Dahi

21.Feb.2024

(필리핀/시아르가오)


오늘은 서핑을 간다

난생처음 프랑스 친구인 클레멍과 함께 가기로 했다

아침엔 루카스와 커피를 마시고 오후엔 바다에 가야지


난생처음 서핑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지만

친구가 있어서 도전해 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너무나 재밌었다

저녁엔 호스텔에서 패밀리디너가 있었다

모두와 모여 즐겁게 밥을 먹었다




가을 무렵 떠났던 여행. 일주일을 계획했지만 5개월이 되어버렸고, 나는 겨울 동안 여름나라들을 여행했다. 모두가 서핑을 갈 때 나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수영을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물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혼자 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여행지인 필리핀의 한 섬, 시아르가오.

모두가 서핑을 하러 온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요즘 떠오르고 있는 서핑의 성지이다.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해결하듯 떠나기 전에 한 번쯤은 서핑을 다녀와야지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친구가 서핑 강사를 추천해 주었고, 마침 같은 호스텔에서 만난 프랑스친구인 '클레멍'이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수영도 못하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이곳 친구들은 모두 괜찮을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래서 하게 된 나의 첫 서핑 경험.


정말이니? 아니면 니 일이 아니어서 그런 거니?


오후 2시에 서핑 강사인 '와에'가 호스텔로 픽업을 왔고, 우리는 더 이상 시크릿이 아닌 것 같은 '시크릿비치'로 향했다. 우리가 머무는 제네럴 루나에서 바이크로 20분 정도. 가는 길이 예뻐서인지 두려움은 없었고 막연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비치에 도착해서 모래바닥에 놓인 롱보드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배를 대고 엎드려 몇 번이고 팝업이라고 하는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흐름에 몸을 맡긴 듯이 두리뭉실한 시간들이 흘러갔고, 우리는 하나씩 보드를 옆에 끼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이때부터였던가.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거지.


라는 생각이 든 게. 그렇게 나는 터벅터벅 물살을 헤집고 바다로 들어갔다. 파도에 밀려 걸음이 느린 건지 두려움에 걸음이 느려진 건지, 아니면 그냥 모든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던 것일 수도. '와에'는 나에게 보드에 오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파도 위에 떠있는 서퍼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합석했다.


지금이야 다히, 너의 순간이

'It's your moment, Dahi. It's coming'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동시에 무슨 뜻인지 몰랐다. 허둥지둥하는 찰나에 그는 나에게 패들링을 하라고 했다. Faster faster. 나는 그의 말에 따라 패들링을 하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와 동시에 내가 올라탄 롱보드가 앞으로 쑤욱 밀리는 것을 느꼈다.


일어나, 다히

'Pop up, Dahi'


지금이구나 싶었고 나는 앞으로 밀려가는 보드 위에서 왼발, 오른발을 차례로 올려놓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해변가까지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이렇게 나는 두 시간가량 정말 오랜만에 무언가에 흠뻑 빠져들었던 것 같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조차도 다시 파도를 잡고 싶어서 물에 빠지는 것쯤은 뒷전이었다. 코로 물이 들어가도 나는 물 한가운데에 있는 '아웨'에게 돌아갔다.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얹어진 롱보드, 그리고 그 위에 어색하게 얹힌 나. 내가 동경하던 그 서퍼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반짝이는 파도 사이로 나는 첫 경험을 했다.


'아웨'는 알까, 내가 그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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