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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이 자는 건 처음이라

아니 해변 노숙은 처음이라

by Dahi

인도네시아 롬복도 많이 생소할 테지만, 또 그 옆에 있는 섬, 숨바와에 다녀왔다. 숨바와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들은 것은 호주 친구 Nav를 통해서였다. 숨바와에 가보고 싶다는 그러던 찰나에 나의 오랜 친구 James가 숨바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길로 무작정 숨바와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롬복 공항에서 숨바와공항까지는 약 30분 정도.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숨바와에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상도 못 했던 일들로 아름다웠던 것은 분명하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있다는 친구, 오늘 바로 다른 섬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어떠한 계획도 없다. 하자는 대로 한다. 잠시 뒤, 공항으로 누군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회색 봉고차,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것은 흡사 위험한 일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가 잘 아는 현지 가족들이다 (나중엔 나마저도 가족이 되어 버린) Tole. 몇 달 전에 발리에서 친구와 함께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때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반전이었다.


Tole의 집에 도착하니, 그의 여동생 가족이 바로 옆 집에 살고 있었다. 그의 조카인 Shelly. 영어를 곧 잘하는 대학생. 쭈뼛거리며 그 곁에 앉아있으니 둘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 다가온다. 공기를 풀어주기엔 또 반려동물만 한 것이 없지 않은가? 그들의 고양이도 합세했다. 한없이 말랑해진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제 떠날 시간이 왔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 첫 섬 투어를 떠났다. 수영도 하지 못하는 내가. 배 멀미가 굉장히 심한 내가. 바로 그런 내가. 그래서 이것은 결국 수영 못하는 사람일 프리 스노클링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낚시를 하다가 배 멀미로 모두를 걱정시킨 황당하고 대책 없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다.



우리는 3박 4일 혹은 4박 5일의 일정을 계획했다. 우리라기엔 James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언제고 변할 수 있는 우리의 계획, 아니 그의 생각. 떠나기에 앞서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샀다. 커피와 초콜릿바, 스낵, 각종 채소와 미고랭, 물과 음료수 등등.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한국인의 기준이라면 아무래도 캠핑 정도?이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커다란 낚싯대와 아이스박스들, 각자의 짐. 그렇게 우리는 James의 작은 보트 위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출발한 시각은 약 5시가 넘은 때였던 것 같다. 우리의 목적지는 Moyo island. James는 내가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의 목적지는 그 근처의 다른 어딘가였다. 작은 배는 앞으로 빨리 나아갔지만, 큰 파도를 누르기엔 너무 가벼운 듯 보였다. 모든 파도의 너울을 하나하나 느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너울이라기엔 조금 더 절도 있는 느낌이랄까? 파도를 하나하나 끊으며 나아갔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파도를 하나하나 튕기며 나아갔다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 여행이 끝난 뒤 나의 엉덩이 아래쪽 살이 다 까졌으니 말이다.



늦은 시각에 출발했던지라 해는 금방 뉘엿뉘엿 넘어갔고, 우리는 멈췄던 한 조용한 섬에서 오늘을 지내기로 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해변가.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한 크루즈에서 나온 사람들이 해변가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프라이빗한 시간을 망친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내 그들은 밤을 보내기 위해 그들의 크루즈로 돌아갔다. 제대로 된 끼니도 먹지 못하고 나온 날, Tole는 우리에게 미고랭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몇 달을 지냈지만 아직도 이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라면을 끓이기 전에 감자도 삶고, 생선도 쪄냈다. 역시나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그 어느 때보다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은 뒤, 밥을 먹은 그 자리에 하나둘 눕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텐트는 사치였다. 아니 사치라기보다 없었다. 파도 소리 바로 옆에 나도 몸을 뉘었다. 밤은 찼다. 친구가 건네준 트레이닝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바닥에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별들, 그리고 그 사이를 움직이는 별똥별. 이제껏 예쁜 하늘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의 어떠한 불빛 없이 반짝이는 달빛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 섬 안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인적은 없고, 바닷게들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한참을 들어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주 작고 길쭉한 모양의 섬이라 한 방향으로 걸어도 양쪽으로 파도가 친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하늘에서 눈을 떼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란 별빛이 해안가를 따라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영화 아바타에나 나올 것 같은 푸른빛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보이는 아주 작고 많은 플랑크톤들, 파도가 하나씩 부서질 때마다 반짝이며 빛을 냈다.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 마냥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달빛이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가를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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