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보니 알았어, 매 순간이 꿈같았더라
왜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섬. 길리에어.
롬복에서의 일상이 살짝 지루해질 무렵, 나는 일주일가량 길리에어에 다녀오기로 했다. 내가 지내는 롬복, 쿠타에서 길리에어까지는 차를 타고 항구까지 2시간가량, 그리고 섬까지 10분. 그리 멀지 않은 기분. 여행 중에 또 떠나는 여행이랄까. 막상 혼자만 지내기는 심심할 것 같아서 친구를 꼬드겼다. 주중엔 일을 하는 친구지만, 금요일 휴가를 내서 금, 토, 일 이렇게 오기로 했다.
나는 이틀 먼저 도착했다. 오랜만에 온 길리에어. 전에 여행을 할 때 내가 가장 애정했던 곳이다. 작은 섬이니만큼 자동차와 오토바이 없이 마차와 자전거가 주된 교통수단이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항구 쪽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내가 이곳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아직도 길 하나하나 선명히 기억이 났다. 예약해 둔 숙소에 체크인을 마치고 바로 바다로 향했다.
몸에 닿는 바다의 물결이 새삼 부드럽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었을까 아니면 물마다 다른 감촉이 있는 걸까. 아직도 그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부드러운 깃털이 온몸을 감싸는 것처럼 파도가 출렁거렸다. 수영을 못하는 나조차도 물에 풍덩풍덩 들어가게 만드는 곳. 아침이면 자전거를 타고 일출을 보았고, 점심 때면 바다에 나가 물에 몸을 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친구가 오는 날이 되었다.
친구는 아침 차를 탔고, 1시쯤이 되어서야 섬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얼굴, 아니 익숙한 곳에서 만나는 낯선 얼굴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 새롭게 느껴졌다. 멋쩍게 웃으며 배에서 내리는 친구를 보고 나도 어색한 듯 말했다.
”이틀만 자는 거 아니고? “
일주일을 계획하고 온 나보다 가방이 더 무거웠다. 대체 뭘 가져온 거야? 우리는 항구에서 친구의 숙소까지 천천히 걸었다. 항구 옆에서 자전거를 빌리라는 내 말을 가볍게 넘겨버린 친구 옆에서 나는 자전거를 끌며 뒤따랐다. 나는 현지인 마냥 이것저것 가리키며 설명하기 바빴다. 사실 딱히 설명할 것은 없었다. 섬을 가로지르는 메인 도로를 따라 카페와 식당이 늘어서있고, 섬은 일출을 보는 해변가와 일몰을 보는 해변가로 나뉜다. 물론, 나는 일출을 볼 수 있는 해변가를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한 낮동안에는 서쪽 해변가가 물놀이를 하기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섬,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는 일. 그야말로 나에겐 꿈이었다. 행복했지만, 행복하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았던 시간. 그리고 그 행복의 정도가 어느 만큼이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나는 꿈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주말의 끝자락에서 친구는 먼저 돌아갔다. 며칠 뒤면 나도 그 곁으로 돌아가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기분이었다. 매일 아침 일출을 보는 일, 오후엔 함께 바다 너머의 산을 바라보는 일, 햇볕아래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특별하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일. 그 무엇보다 친구의 모든 시간을 내가 가진 것 같아서 행복했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그 섬이 좋았던 걸까. 그도 아니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던 걸까.
그게 무엇이든, 나는 꿈에서 깨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기억나는 꿈의 끝자락을 붙잡고 친구의 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