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hl Jul 06. 2019

꽃님, 오로라 그리고 울동이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는 법#0

*. 본 글은 여러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루 20분] 매거진에 연재 중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하루 20분] 매거진에 참여하게 됐. 어떤 일을 정해  20분 동안 하고 그걸 기록하는 곳인데, 현재 매거진을 만든 보름님, 그리고 그 매거진에 먼저 참여하시며 매거진의 존재를 알려 고무라면님 등 여러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하는 일은 산책, 남미 노래 해석, 로잉, 웃기 등 다양하다. 난 뭘 해야 할까-고민하다 내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래 '아이들과 20분 동안 놀아주기'를 하는 거야!


아니, 아이들이 아니라 고양이님들이던가?


나는 두 마리 고양이의 집사다. 고양이들과 놀아주기 전에, 먼저 어쩌다 집사가 됐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4년 전 취업에 성공해 회사 근처로 집을 얻었다. 회사와도 가까웠지만 지하철역과도 가까웠던 그곳은, 건물 밑에도 편의점이나 음식점, 카페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었고, 길만 건너면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백화점에 갈 수 있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은 크고 하얬으며, 1층엔 항상 두세 명의 관리인 아저씨가, 지하엔 관리사무소가 따로 있는 제법 큰 오피스텔이었다. 그 안에 살며 나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된 것 같았다.


그래, 이제 행복 시작이야!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마음과 지갑에 모두 여유가 넘치는 시기였다. 난 아직 젊었고, 회사에선 '내가 이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은 돈을 꼬박꼬박 통장에 넣어주고 있었으니까. 일단 배가 부르고 등이 따수우니 그동안 '먹고살기 힘들어서'란 이유로 미뤄뒀지만, 언젠간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유기묘 입양이었다.


사실 오래전에 알던 누군가가 지금의 나를 보면 의아할 수도 있다. 나는 '강아지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라고 물으면, 항상 강아지가 더 좋다고 했던 사람이니까. 님이를 만나기 전까진.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를 준비하겠다 집에 틀어박혀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이것 봐라~라며  두 손에 폭 안긴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나타났다. 한 마리는 까만색인데 중간에 흰 털이 얼룩덜룩 있었고, 한 마리는 흰 털에 밝은 갈색 무늬가 있었다. 어미를 잃고 울고 있는 걸 보고 엄마와 같이 일하던 가게 직원이 데려온 거였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어미가 어딘가에 먹이를 찾으러 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당시 우리 가족 중 유일한 고양이 덕후였던 동생이 밖에 나가 있었기에, 얼른 '엄마가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키울 거야?'라고 문자를 보냈다. 얼마 후 동생은 단박에 '오케이'를 외치고는, 두 손 가득 고양이 용품을 사들고 집에 왔다. 생각 같아선 두 마리를 같이 키우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만큼 손이 많이 갈걸 걱정한 엄마는 까만 아이를 다른 직원의 집으로 보냈고 흰 아이만 우리 집에 남게 다. (후에 까만 아이는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보내져 새끼도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겁 많은 꽃님이



멋들어진 영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며칠을 고심하던 우리는 결국 아빠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꽃님'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조금 촌스럽지만 예쁜 이름이었고, 꽃님인 그렇게 우리 집 막내딸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몇 달 만에 동생이 교환학생으로 일본으로 가게 됐고, 꽃님인 집안에서 유일하게 백수인  보살핌을 받게 됐다. 엄마와 아빠는 일을 하러 나가고, 집에 남은 나와 꽃님인 항상 함께였다. 잘 때도, 티비를 볼 때도, 그리고 공부를 할 때도. 내가 책상에 앉으면 스탠드 아래에 자리를 잡고 움직이는 펜을 쳐다보다 손으로 툭툭 치기도 하고, 놀아달라며 노트북 위에 올라가 'ㅁㄴㅁㅇㄴㅇㄴㅁㄴㄴ'같은 이상한 문자를 치거나 아예 모니터를 꺼버리며 공부를 방해하기도 했. 하지만 그 모든 순간, 꽃님이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 뒤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는 얼마 후 고시를 포기하고 취업준비를 하다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렇게 이제 꽃님이와는 몇 달에 한 번 정도만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됐지만, 오랜 간의 공백에도 꽃님이는 나를 기억하금세 무릎으로 올라온다. 얼굴과 몸을 찬찬히 쓰다듬고 있으면 골골 송을 불러주고, 더 만져달라 바닥을 이마 툭툭 건드린다.




그렇게 나는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고, 혼자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 곧 고양이를 키우고 싶단 생각을 했다. 꽃님이와 지내며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니 펫숍에 전시된 새끼 고양이들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길 고양이들어떻게 생겨난 건지를 알게 됐기에, 돈을 주고 사거나 분양을 받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퇴근 후 컴퓨터를 켜고 유기묘 입양 공고 사이트를 들락날락했고, 어느 날 그곳에서 '오로라'라는 신비로운 예명을 가진 아이를 보게 됐다. 검은색처럼 진한 갈색 털에 줄무늬가 있고, 발끝은 하얀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보이지 않는 사냥감과 대치하고 있는 듯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고는 홀딱 반해버렸고, 곧 입양 신청서를 보냈다.  


그런데 웬걸. 이후 연락이 온 입양 담당자분  '오로라와 같이 임보(임시보호)하고 있는 아이가 있는데, 둘이 서로 너무 잘 지낸다'둘을 같이 입양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순간 몇 평 안 되는 좁은 원룸이 걱정됐지만, 그녀는 집의 크기는 상관없다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생각해보니 둘이면 내가 회사에 있을 때도 서로 의지할 수 있으니 더 좋을 것 같았고, 결국 두 마리를 다 입양하겠다고 했다. 그 다른 아이의 이름은 '울동이'였다. 사진을 보니 과연 오로라와 비슷한 외모에, 둘이 딱 붙어 있는 걸 보니 마치 남매 같았다. 오로라만 입양했다면 사이좋은 둘을 갈라놓는 일이 됐을 텐데, 잘했단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얼마 후, 보호센터의 자원 봉사자 두 분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조그만 두 생명체와 함께.

 

어딘가에 숨어있길 좋아하던 울동이
오자마자 적응 100% 였던 오로라


그분들이 건네준 서류엔 아이들에 대한 정보와 함께 내가 꼭 지켜야 할 것들이 빼곡히 적혀있었고, 나는 그 내용들을 모두 꼼꼼히 읽고, 집을 구할 때 했던 것처럼 겹쳐진 서류에 사인을 했다. 마지막으로 책임비를 센터로 입금하고 나니 모든 게 끝났다. 내가 오로라와 울동이의 엄마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감격도 잠시, 봉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오로라는 그 작은 체구로  몸의 반 만한 큰 간식 캔 한통을 혼자 다 먹어치웠고, 울동이는 책상 밑 체중계 뒤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날 좋아할까.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곧 다시 생각했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 다음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