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다른 이름, 선택권을 준다는 것
그는 대부분을 내게 맞추려 하는데 가끔은 그런 이유로 선택권을 미루는 게 답답할 때도 있었다. 특히 점심이나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오늘 뭐 먹지'는 지상 최대 난제 중 하나이지 않은가. 항상 "애기가 먹고 싶은 거 먹자."라고 해, 맨날 먹고 싶은 게 없는 건가? 아님 그냥 아무 생각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엔 닭볶음탕을 먹자는 내 말에 반기를 들고 쌀국수를 외친 적이 있다. 퇴근 후에도 남은 회사 일이 있어 빨리 먹고 들어가서 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어쩔 수 없이 자리가 많은 대로변의 체인점에 들어갔다. 평소에 자주 지나치며 텅 비어 있는 모습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가끔 그의 제안 리스트에 들어가 있어도 선택받지 못했던 곳이었다.
허겁지겁 몇 숟갈 뜨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밥알이 이렇게 부서졌다는 건 볶기 전의 밥이 딱딱했다는 뜻이고, 딱딱했다는 건 엄청 오래됐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입맛이 뚝 떨어져 수저를 내려놓으니 그가 먹던 쌀국수를 밀어주고 문제의 볶음밥을 마구 퍼먹었다.
싫어하는 델 굳이 데려가 이 꼴을 보게 한 게 미안한 그 마음을 알면서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컴플레인을 할까, 말까 열 번쯤 고민을 하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괜히 여기로 오자고 해서 미안,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부턴 절대 오지 말자!" 자기가 그 볶음밥을 만든 것도 아닌데 미안해하는 그를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대충 먹고 나오는데 생각해보니 그 오래된 밥이 이미 나와 그의 몸안으로 들어왔다는 데 다시금 짜증이 나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괜찮아?" 놀라 내 표정을 살피는 그의 모습이 얼른 자리를 뜨려 허겁지겁 볶음밥을 밀어 넣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미안, 내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