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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Oct 23. 2018

저 오늘 떠날 순 있는 건가요?

또다시 떠나는 길입니다, 아마도.

알아들을 수 없는 승무원의 방송 소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익숙하면서도 낯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Ladies and Gentlemen. Welcome to Mongolian Airlines….”


나는 지금, 또다시 떠나려 하는 중이다.



*



떠나는 날의 아침은 늘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한국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이미 떠나버린 것만 같은 기분. 그런 기분에 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부터 부산스레 준비를 시작하는 것. 내 여행은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공항 셔틀을 예약하려고 했으나 새벽 비행기인 탓에 시간이 맞는 셔틀이 없었다. 할 수 없이 KTX를 예매하고 편한 몸과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내가 살던 곳들이 멀어져 갔다. 



공항으로 가는 기차임을 알리듯 이미 짐칸엔 큼직큼직한 캐리어들이 가득했다. 조금 앉아서 쉬다 보니 어느새 공항. 팔목엔 아대를 감고, 장롱에서 꺼낸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다시 인천에 도착했다. 지난 여행을 끝내고 8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다시 떠나는구나. 생각보다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공항으로 돌아와서인가 감회가 새로웠다. 시간은 넉넉했던 탓에 공항 이곳저곳을 헤매며 간만의 재회를 마음껏 즐겼다.


밤이 깊어갈수록 공항은 점점 한산해져 갔다. 물론, 나처럼 새벽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있기에 완전히 빈 것은 아니었지만 낮의 공항과는 달리 차분하고 정적이면서도 묘하게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공항을 가득 채웠다. 불이 죄다 꺼진 공항의 상점들을 지나 탑승구로 향했고, 그 자리에서 또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나의 몽골 여행은 그렇게 기다림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악명이 자자한 몽골 항공답게 출발 시각은 이미 지난 지 오래. 언제쯤 날아오를 수 있을지를 조심스레 가늠하며 한참 동안이나 새벽의 인천공항을 바라보고 있었다.


몽골항공인 MIAT는 'May I Arrive Today?'나 'Maybe I Arrive Tomorrow'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지연과 연착이 잦다. 내가 탄 비행기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간신히 탑승을 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1시 반에 출발했어야 할 비행기가 2시를 지나 3시에 가까워지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날 새는 것을 보고 갈 참인가, 하고 온갖 짜증을 속으로 내고 있을 때쯤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드디어 출발이다. 



한번 떠나보니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혹은 짐이 무겁더라도 그냥 여행을 통해 자유로움을 느낀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편안한 이 기분.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가볍고 설렌다. 앞으로도 늘 이런 인생을 살아가길. 떠날 수 있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삶.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멋진 풍경을 바라보게 될까, 나는 내 앞에 펼쳐질 모든 것들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벌써부터 모든 것들이 설렌다. 좀 전의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설렘만 마음 가득 품은 채 비행기와 함께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날아오르기 위해 달리는 순간이 좋다. 떠날 것을 예고하듯 잔뜩 붙은 가속도와 온몸으로 느껴지는 속력, 그리고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느낌까지. 몸을 누르던 관성이 약해지고 바닥을 구르던 바퀴의 느낌도 사라진다.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과 점점 작아지는 도시의 불빛.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별들이 총총히 빛나는 모습에 내가 드디어 떠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지독하게 피곤하지만 그래도 기대된다. 잔뜩 흩뿌려진 몽골의 별과 사막, 내가 담아 올 몽골의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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