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밤일기 Oct 30. 2018

패키지여행은 여행이 아니라고요?

여행의 형태

누구나 다 하는 여행, 남들이 다 가는 여행지, 패키지여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란 대개 그런 것들에 불과했다. 누군가가 패키지여행은 ‘흔한’ 여행이기 때문에 여행이 아니라고 했다. 패키지여행은 유명한 곳만을 골라서 다니는 여행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했고, 많은 사람이 모여 정해진 일정을 우르르 몰려다니니 느끼는 점도 없을 것이라 했다.


나는 장기 여행이 좋았고, 자유 여행은 더 좋았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너무 게으른 탓이었다. 늘어지게 잠을 자다가 슬그머니 기어 나와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는 것을 좋아했고,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면 곧장 숙소로 들어와 기분 좋은 낮잠을 즐기는 것 또한 굉장히 즐겼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패키지여행이었던 몽골 여행을 싫어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내겐 자유 여행을 할 금전적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무턱대고 떠나기엔 몽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혼자서 여행을 할 만큼의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사에서 일정을 짜주는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그래서 내 여행은 행복하지 않았나? 즐겁지 않고, 피곤하기만 했던가?



참 신기하게도 나는 그 어떤 여행지를 거닐던 때보다 많이 웃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던 내가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신나게 웃었고, 아플 땐 옆에 있어 줄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끙끙 앓던 자유 여행 때와는 달리 멀미로 질려가는 내 상태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이런저런 약에 베개까지 건네던 사람들이 내 일행들이었다. 다쳤을 땐 곧장 파스와 연고를 꺼내 빌려주고, 가진 것들을 서로 나누면서도 크게 아까운 줄 몰랐다. 정해진 일정대로 돌아다녔다. 오전 여덟 시면 기상해서 다 같이 아침을 먹었고, 길 가다 차를 세워 또 다 같이 같은 메뉴의 점심 식사를 했다. 모두 같은 곳으로 가서 같은 풍경을 보았으며 일정이 끝나고 난 후에도 우리는 같은 숙소에 머물렀다. 불편했다. 신경 쓰이는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 냄새는 물씬 나는 여행이었다. 외로울 틈이 없었다. 심심할 틈도 없었고, 종종 때가 되면 늘어놓았던 각자의 여행담이나 연애담 같은 것들이 우리의 사이를 조금 더 돈독하게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몇몇 사람들이 무시하던 ‘패키지여행’을 즐겼다.


남들이 다 가는 여행지라도 내겐 처음 가는 여행지였고, 남들이 다 하는 여행이라도 내겐 처음 하는 여행이었다. 몽골에 다른 숨겨진 곳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천천히 즐겼을 때 그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내 여행이 싫지 않았다.


어떤 형태의 여행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여행을 즐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 남들이 다 가는 흔한 여행이라 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우리만 즐겁고 행복했다면 충분히 좋은 ‘여행’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에 갑갑함을 느낄 때 나는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서 선택한 여행에서조차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여행에서 즐겁고 행복했다. 설령 누군가가 내게 제대로 본 것이 하나도 없다며 지적하더라도, 나는 오로지 그렇게 즐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전 01화 저 오늘 떠날 순 있는 건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