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의 매듭

인연은 약속의 연속

by 정다훈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은 약속의 연속이다. 수많은 약속으로 얽히고 얽힌 인연. 그 인연은 헤어져서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있다. 매듭의 시작을 풀어내어 서로 얽히지 않는 평행선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마지막 매듭을 서로 얽히지 않도록 따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 낸 것일 뿐. 여기 한 남녀가 있다. 이들도 수많은 약속으로 뒤엉켜진 상태의 인연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매듭을 더 이상 얽히지 않도록 묶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마주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릴 것 같던 두 사람은 예전에 미리 맺어둔 한 매듭이 기억났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고 남자도 여자를 사랑했다. 그들은 만약 자신들이 사소하던 크던 어떠한 문제로 이별을 맞이한다면, 서로를 위해 한 번의 기회를 만들자는 약속. 헤어진 후에 세 달이 지나서 그들이 자주 가던 한 술집에서 만나서 술 한 잔 하며 속의 이야기를 모두 내뱉자고.


그들은 이별 후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마 그렇게 보이기 위해 지독히 노력중일 것이지만. 여자는 보다 깊은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것에 외로움을 느꼈고 남자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곳이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점점 지나간 사랑에 무뎌지는 두 사람. 그러다 핸드폰 캘린더에 알람이 울렸다. 어느새 일주일 뒤면 세 달째가 되는 이별. 여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알람을 본 이후로 조금씩 그 술집에 가까워졌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세 달째가 되는 날의 술집 풍경을 상상하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다. 마침내 찾아온 그날에 그녀는 술집이 오픈하자마자 들어가서 간단한 주문을 하고 기다린다. 남자가 언제 오든 바로 얘기할 생각을 하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중이다. 여자는 사랑스러웠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다 마주한 이별의 시간이 다시 과거로 보내어 행복을 찢는다. 그들이 불행했던 기억을 그 틈새로 꺼내어 온다. 그럼에도 여자의 마음은 불행을 덮었기에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 있도록 만든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안주로 시켰던 탕의 국물이 차가워질 때마다 데웠던 탓에 안의 내용물들이 불어 터질 정도가 되었을 때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그 조차 나오지 않았다.


남자도 알람을 보았다. 헤어지는 날, 여자의 성화에 못 이겨 등록시켜 둔 세 달 뒤의 날짜.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하며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알람을 본 이후로 여자와 있었던 추억이 하나, 둘 머릿속을 휘저어놓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럴 때도 있었지 뭐-하던 중, 갑자기 고개를 들어 바라본 거리의 풍경에 지나온 추억이 지나간다. 그 기억들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남자는 마음을 굳힌다. 서로를 위해서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만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지 않겠다-라는 말을 전해놓을까 말까 하다가 어차피 안 오겠지-하며 만지작 거리던 그녀의 연락처를 내려놓는다. 마침내 찾아온 그날, 남자는 생각도 하지 않으려 일찍 잠을 청해볼까 하다가 친구를 불러 다른 동네의 술집을 간다. 신나게 마시고 놀다가 조금 마셨을 무렵 갑자기 무언가 그를 잡아 이끄는 듯이 친구를 버려두고 어딘가로 뛰쳐나간다. 얼마를 뛰었을까. 용케 넘어지지 않고 부딪히지 않고 계속해서 뛰어가는 남자. 뛰어가는 동안에 단 하나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지나간다. 여자의 행복한 얼굴. 남자는 그것 하나만 생각하며 그 술집으로 뛰어갔다.


마침내 들어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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