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연애가 하고 싶어”
또래 남자 네 명이서 밥을 먹다가 갑작스러운 한 명의 선언과 같은 말. 우리는 평소에 이 친구가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보기도 했고 환상도 있으며 이성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렇지 않게 ‘그럼 하던가.’, ‘어쩌라고’와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무슨 말을 더 해줄 수 있겠나. 하지만 그 녀석은 진지한 눈빛으로 우리의 반응을 못 들은 체 비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짐한 표정이었다. 대체 이놈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두려워서 급히 밥을 다 먹고 데리고 장소를 옮겼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 앉자마자 녀석은 다시 말했다.
“연애를 할 수 있게 해 줘!”
연애라는 게 단순히 ‘너 얘랑 사귀어라’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던가. 우리는 그럼 소개를 해주겠다, 혹은 관심 가는 사람이 있으면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말했지만 녀석은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우연찮게 눈에 들어온 여자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고. 친구 한 명이 듣다 못해 일침을 날렸다. ‘그딴 생각으로는 평생 연애할 수 없을 거다. 니 삶이 증명하듯이.’ 우리는 통쾌했지만 한편으론 그 친구가 화를 내진 않을까 싶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이었다.
”분명 이딴 마음으로는 남들이 하는 평범한 연애를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연애를 못했어. 처음만큼은, 첫사랑만큼은 지독하게 엮이거나 환상적인 순간이 펼쳐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사랑을 해보고 싶어. “
우리는 모두 웃음이 터졌다. 진지한 모습으로 하는 말이 저런 환상이라니. 아직까지 사랑이 얼마나 하찮고 쓸모없는 감정인지, 또 한편으로는 그 속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나서 아무렇지 않던 것에 의미를 넣고 사랑이라고 생각해야만 하는 감정인지를 모르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그의 환상이 너무 우스웠다. 그런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것도 나이가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나온 시간에서 이를 느꼈으며 지나온 사랑에서 이를 잃었다. 사랑은 이성과 나의 깊은 연결고리를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 때론 타인의 사랑을 이용하고 나의 사랑을 이용당하며, 사랑이란 핑계에 묶이고 사랑이란 변명으로 묶는다. 한데 이 놈은 무엇인가. 사랑이란 감정을 오래 느껴본 적이 없는 탓인지 그 환상이 너무 깊어졌다.
“나는 운명을 믿어. 분명 나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뼛속 깊이 가르쳐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란 걸.”
참다 참다 나도 한마디 보태게 했다. 이 녀석은 로또를 사지도 않고 1등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는 헛된 망상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여자가 갑작스레 자신에게 사랑에 빠져서 다가와주길 바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기껏 해봐야 잘생긴 남자라면 그 외모에만 사랑에 빠진 사람이 간간이 나타날 뿐, 정말 사랑이란 감정을 가지기엔 그 마저도 부족한 면임에도 아무것도 없이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기대하다니. 평생 연애를 못할 팔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딴 마음으로는 사랑 자체를 시작할 자격이 없지 않을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친구는 웃었다.
“그치만 사랑이 애초에 환상 아니야? 너희가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는 어땠는데?”
다들 지나온 첫 번째 사랑. 첫사랑에 대해서 좋게 말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도 그때는 운명이란 생각을 했다는 것.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우리가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은 어땠는지. 어떻게 그런 환상적인 일을 시작했고 얼마나 행복했던 사랑이었는지.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때의 사랑이 아름다웠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곧장 이어질 어떻게 그런 지독함을 경험했는지 얼마나 추했던 시간인지를 깨달을 때까지. 첫사랑은 그 자체의 설렘과 처음에서 오는 미숙함이 공존하며 그런 조합은 절대 좋은 추억으로 남아주지 못했다. 아직 그런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친구에게 이 정도의 환상은 충분히 있음직 하다.
“솔직히 나도 알아. 그딴 사랑은 없겠지. 하지만 그래서 시작을 못하겠어. 사랑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알게 될까 봐.”
아무도 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