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주체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아닌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지만 어느 순간 눈과 귀가 집중하고 몸이 자연스레 움직인다.
궁금하다. 나의 이런 모습이 부담이 될까 아니면 더 다가오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낄까.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가 물러서서 기다려야 하는가.
괜히 말해봤자 좋은 소리를 듣거나 해결책이 나오지 않음을 알고 있어도 나도 답답해서 주변에 묻고 물었다.
과감하게 달려들어서 나의 마음을 알려야만 상대방도 내 마음을 알고 결정을 해준다는 사람들과 괜히 서로 불편하고 어색할 수도 있으니 성급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면서 조금씩 다가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두 부류다 한 마음으로 말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알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어떻게?
그걸 모르겠어서 물었다. 하지만 질문에 돌아온 답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보여줘도 괜찮은 걸까.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의 눈치 없음에 답답함을 느끼고 그걸 돌파해 낼 용기가 없는 나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누구의 문제인가.
나는 안다. 이 문제를 만들어낸 나의 문제점임을. 하지만 그럼에도 애써 내 탓이 아닌척하고 너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것이 이기적이면서도 사랑의 면모가 아닌가.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조차도 과한 내 욕심처럼 느껴진다. 그만두지 못할 것은 안다. 하지만 분명 속도를 맞춰줘야 할 터인데 나만 먼저 튀어나가는 느낌이다.
왠지 너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혼자 설레발을 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차마 더 나아가질 못하겠다.
이런 내 모습을 본 주변인들은 또다시 입을 모아 말한다. 걱정과 생각이 과하다고. 또 내가 과한 건가.
그러다 장난스러운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
“선택과 행동은 너의 결심에서 나오지만 결론을 내려주는 것은 상대방이잖아. 왜 네가 혼자 판단하고 책임지려고 그래. 그것도 실례 아닐까.”
그래,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으면서 계속해서 내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이 맞다. 왜? 두렵잖아. 거절당할까 봐, 사랑하는 사람이랑 멀어질까 봐,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올려보고 싶어서 이런 것까지 생각하는 거잖아. 이 행동에 대한 책임을 넘길 수는 없잖아..
이런저런 생각이 아닌 걱정만 하면서 혼자 앓고 있었다. 그러다 한 번 결국 못 참고 선을 넘어버렸다. 처음에 말했을 때는 아무 생각 없다가 점점 얼굴이 붉어졌다.
누가 들어도 이 말은 대놓고 티 내는 말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말할 마음은 없었는데, 좀 더 신중히 다가가고 싶었는데 하면서 혼자 자책하려는 순간 대답이 들렸다.
“나도 용기를 못 내겠었는데,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
이건 그래, 그녀가 선택을 했다. 나에게 존재하는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었기에 부담스러웠고 무거워서 외면했었다.
근데 함께 들어준다는 말을 들었다.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나의 과한 걱정이 안겨준 아픔은 이제 아무렇지 않아 졌다.
그렇게 힘들게 가져낸 이를 더욱더 아껴주고 소중히 하고 싶었지만 한 번 열리기 시작한 마음은 내 마음대로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말이다.
그녀와 나의 처음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둘 다 서툴렀고 어색함이 맴돌아서 이전처럼 편한 관계가 아닌 것에 신경을 너무 쓰고 있었다.
그래도 점차 여느 연인들처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하면서 본연의 모습들을 하나 둘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 그녀는 쉽게 감정적인 사람이 됐다.
나는 그녀 앞에서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녀를 위한 행동은 할 줄 알았지만 정말 위해주지는 못한다가 맞는 것 같다.
서로 맞춰주지는 못하고 무엇을 선호하고 바라는지 하나도 모르는 체로 연인의 시간은 흐른다. 나는 더더욱 많은 것을 주길 바랐고 많은 것을 받길 바랐다.
그녀는 아니었다. 그저 잔잔히 서로의 마음만 확인하고 아무렇지 않게 편하게 지내는 것이 더 좋았던 것이다. 이보다 급해진다면 결국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최대한 숨기고 아꼈다.
아직 깊이 파지도 않은 구덩이에 무작정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쏟아부었더니 넘쳐 나왔고 그건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녀는 결국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에 텅 빈 마음만을 안고 언젠가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하나씩 퍼내고 신중히 심어주고 있었다.
그래, 깊이가 다르고 넓이가 달랐다. 나의 급진적인 성격 그녀에게 쓰레기더미를 떠 안겼고 그녀의 과한 조심성은 나에게 허무를 안겼다.
아무 말 없이도 느껴지는 서로의 마음에 남아있는 것들. 결국 넘쳐 흘린 걸 감당하지 못한 네가 이별을 뱉었다.
난 어차피 상관없었다. 있어도 비었고 없어도 비었다. 남아있는 것이 없고 채워줄 이도 없다는 생각에 빠져있다. 우리 둘은 결국 각자의 책임만을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지 못했다.
누가 과했던 걸까. 내가 너무 급했던 걸까 네가 너무 느렸던 걸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