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이 찾아오는 시간
굉장히 늦은 혹은 이른 시간 새벽 3시. 이런 시간에 추위가 쌀랑함으로 바뀌는, 알게모르게 따스함이 다가옴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 봄의 새벽 3시다. 잠이 오지 않아 잠깐 나온 산책에 추위가 스며들지 않으니 이런 저런 생각이 찾아온다.
따뜻했던 기억들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이다. 그 시절의 기억들이 따스한 것인지, 어린 시절의 내가 따스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옛날 일들은 대부분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들. 행복을 느끼고 따뜻하게 살아온 날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희안하게도 생각만 나면 행복했던 일들이다.
힘들었던 일들이 없었을까, 아니. 오히려 매일같이 찾아오는 고민거리와 고난이 일상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학습지를 어떻게 다 할지, 학원을 그만가고 싶다던지, 중고등학생때 앞으로 어떤 진로를 가질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친구관계를 어떻게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같은 커다란 고민들.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워서 다른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던 고민들이 어느 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 들었고, 그렇게 비어버린 공간에 남은 것이 그런 고민 없던 순간들인 것이다.
항상 봄은 새로움이 찾아오는 시기로 표현된다. 추위가 끝나고 다가온 따뜻함, 새로운 잎과 꽃이 피어나는 시기,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의미. 나는 이 봄이 오히려 그 어느 계절보다 많은 과거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이 피어난 잎들은 지나온 시간들이 쌓인 결정체, 그리고 처음으로 피는 것 같은 꽃은 이미 작년과 그 전에도 피어나며 올해 더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 한 해가 끝났다 하여 지난 해의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해에 새로이 덮여질뿐.
그렇기에 더더욱 봄 공기에 알게 모르게 묻어있는 흙내음에 어린 시절의 놀이터를 떠올리곤 하는 것. 그 행복했던 시절의 나는 지금에 와서 가벼워 보이는 고민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무거웠던 고민을 안고 살았고, 그럼에도 그 속에서 견디고 이겨내어 행복을 찾았던 강인한 아이였다. 지금에 와서 힘든 일들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의미없는, 한없이 가벼이 느껴질 고민들이겠건만, 당장의 나에게 어려운 것은 어려운 법.
그렇기에 새로운 시작에서 나는 지난 날로 돌아가버린다. 다시금 찾아올, 알 수 없는 일들의 두려움이 나를 과거로 데려다 놓는다. 나의 과거를 뜯어 고치고 고치며 더더욱 완벽한 꽃이 피어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돌아가지 못할 시간을 돌려놓는다. 이 따스한 공기에서 나는 차가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