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사랑
사랑을 하겠다. 음, 매우 쉽고 간단한 해답이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매화는 이미 피고 곧 있으면 벚꽃이 필 무렵의 봄. 언제부턴가 봄옷을 입을 날짜가 줄어들면서 사라진 옷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다시금 어울리는 옷을 구하고 머리를 가꾸고 가장 위에 떠있는 해처럼 제일 밝게 나선다.
이 설레는 날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다른 커플들이다. 겨울에는 다들 어디 숨어서 있거나 꼭 붙어서 가던 곳만 가던 이들이 언젠가부터 일상 속에 쉬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로 시밀러룩으로 잔뜩 꾸미고 적당히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우리들이 커플이요~'하고 광고하는 듯한 모습에 자연스레 10cm의 '봄이 좋냐'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이젠 배알 꼴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을 해야겠다-라고 다짐한다. 그래, 나도 저렇게 당당히 사랑을 하겠다. 그토록 새롭고 아름다운 따스함이 또 있겠나. 이번 벚꽃만큼은 꼭 연인의 손을 잡고 다정히 구경을 가고 싶을 뿐이다. 벚꽃 잎이 도로 위의 쓰레기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축하하는 폭죽으로 느끼고 싶은 것.
근데 그래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이미 아름다운 세상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존재할 뿐, 그저 칙칙한 사람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무지개 세상이 전부다. '사랑을 하자!'라고 낭만스러운 말을 던지고 다짐을 했지만 결국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세상에 내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바깥을 걷게 하는 것은 높게 뜬 해가 알리는 봄의 알람이 아닐까.
그래서 다짐했다. 나는 나부터 사랑하기로. 지난 시간 얼마나 많은 원망을 스스로 소리치고 들었는지. 차디찬 얼음장 같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지도 못하는 여린 아이의 모습을 끝내 외면하고 채찍질하지 않았나. 지치면, 넘어지면 괜찮다는 말보단 빨리 일어나라는 말을 해야 했던 지난 계절을 잊고 봄이란 핑계로 새로움을 찾고자 한다. 그 시작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끝에 피어나는 것이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울 것이기에.
밝아진, 따뜻한 햇빛을 내리는 세상에 적응하고자 한다. 마냥 나의 세상에 맞춰두었던 어두움을 깨고 밖으로 나와 다른 이들과의 삶에서 나를 비추려 한다. 그래서 밝게 빛나는 세상에 떳떳이 나를 세워두려 한다. 이런 다짐을 한다. 그래 했다. 사랑을 시작했다.
강한 햇빛이 세상을 밝혀주지만 아직 뜨겁지 않은, 기분 좋은 따스함이 감싸주는 이 시간, 정오의 봄에 나는 사랑을 다짐했다. 나와의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