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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봄

무언가 시작되는

by 정다훈

이제 살짝 더위가 찾아오는 듯한 하루, 세상이 제일 뜨거운 시간인 오후 2시는 봄이 자신을 잊으라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은 열기를 뿜는다. 유리창 위에 얹어진 햇빛과 드리우는 그림자, 세상이 멈춰버린 기분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가오는 나른함과 봄이 주는 정체 모를 안락함은 시간을 멈추게 만든다. 분명 새벽의 차가운, 겨울이 남긴 공기와는 다르게 오후의 봄은 여름의 초입을 알리는 뜨거움이 있다. 이 공기를 마실 때면 무언가 내 평소의 마음가짐과는 다른 것이 생겨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다. 저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테지만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알게 모르게 미소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읽다 만 책 한 권이 널브러져 있는 공원의 벤치, 조용하지만 각자 저마다의 소리를 내는 사람들. 아직 다 터지지 않은 꽃망울이 언제 터질까 하는 단순한 기대만으로 행복한 계절.


오늘 일지 내일 일지 아니면 오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이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나에게 변화를 일으키리란 확신을 준 것은 오늘 오후 2시의 봄날이라는 것.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예정도 없다. 하지만 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언젠가 나에게 가장 큰 변화를 일깨워 주리란 것.


그렇다. 우리는 항상 그런 말을 한다. 익숙함에 속지 말자고. 이 평범한 날이 익숙해지는 어느 날, 당연스레 여기던 겨울의 추위가 당연하지 않게 된 오늘날, 이 따스함을 가져다준 봄날에 나는 언젠가 추위를 잊을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기대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나의 일상을.


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봄의 오후 2시는 그렇게 페이지를 넘길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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