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달게 느껴질 때

by 정다훈

성인이 되어서 눈치 보고 몰래 숨어서 하던 모든 것들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더 이상 학생과 미성년이라는 굴레에 묶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사라지고 수많은 책임감과 전혀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에 순응하고 성인이 된다고 해서 나의 세상이 그리 달라지지 않음을 깨달을 때쯤, 밤새서 사람들과 모여서 술도 마시고 노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아질 때, 그렇게 새로웠던 것들이 익숙해지고 익숙해짐에 따라 질리고 허망하게 느껴질 때 나는 이별을 했다.


19년 동안 지내온 동네와 주변 사람들을 떠나서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다른 곳에 떨어졌다는 두려움이 있을 때 만난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한 번도 직접 마주치거나 인사한 적 없었던 너와는 공통점 단 하나로 쉽게 친해졌다. 서로 함께한 추억은 없지만 같은 곳에 대한 추억과 얘기가 있다는 것은 단순이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느끼게 해 줬다. 그런 그리움이 어느 순간 너와의 순간을 기다리게 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같이 모든 것을 하다 보니 당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했다. 우습게도 새로움만을 바라던 20살이 익숙함을 끌어내 준 것에 이끌려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느꼈던 감정의 깊이가, 그 익숙함에서 흘러나온 따듯함에 심취되어 버린 각자의 모습이 설렘이라는 단어로 정의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내 서로가 너무 어리게 보이게 됐다는 것.


우리는 단순히 '어려서 그래'라는 말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이에게 가벼운 위로를 건넨다고 생각했지만 그 속 뜻은 위로가 아니라 경고였다. 우리가 어린것은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었으며 그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고 또한 이것은 모든 것을 아울러 사람 됨됨이에 이르렀다. 그렇다. 우리는 어렸기에 이런 감정이 설렘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고 그런 경험이 없었기에 쉽게 연애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준비되지 못한 관계를 시작함에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네가 이성적으로 싫지 않았고 너 또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하나 앞에서 말했듯이 그 사랑조차 너무 어렸다.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어릴 때와는 다른 연애를 하고 싶었다. 고작 연애 한 번을 하는 것뿐인데 20살이 뭐 그리 특별하다고 마치 결혼한 것처럼 서로를 붙잡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계속해서 많은 책임을 요구했고 아무도 이득을 보지 못한 채 서로를 상처 입히며 너를 위한 희생을 했다고 소리쳤다. 희생자만 있고 승리자는 없는 그런 소모전. 그럼에도 처음 해보는 모든 새로운 것이 너였고 나였다. 기분이 좋을 때면 둘이서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처럼 서로만 바라봤고 그렇지 않을 때면 우리를 빼고 모두가 다른 세상에 가버린 것처럼 서로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해를 바랐고 이해를 주지 못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호텔의 스테이크가 아니라 평범한 고깃집의 삼겹살이었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 사랑이라고 못해줘서 안달이었고 못 받아서 화가 났고 뽐내지 못해 싫증 났고 맘대로 되지 않아 화를 냈을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어 익숙하다 생각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 이런 이기적인 배려는 결국 너보단 나를 위함이었고 나보단 너를 위함이었음을 깨달았을 때쯤, 우리는 또 익숙하게 자주 가던 술집에 갔다. 맨날 써서 맛없다고 잘 마시지도 않던 소주를 먼저 시켜놓고 마시고 있던 너는 내가 왔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왔냐며, 춥지는 않았냐고 물어보며 내 잔을 채워줬다. 그리고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서로 별다른 얘기도 없었고 다툼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표현한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느껴지게 하는 그런 분위기. 수없이 눌러 담아왔을 얘기와 피해왔던 그 얘기가 못내 네 입에서 꺼내질 때 나는 대답을 뒤로하고 네가 따라준 잔을 털어 넘겼다. 매일 같이 쓰다고 못 먹겠다고 말하며 귀여운 표정을 짓던 너 앞에서 고작 이러면 멋있겠지 하며 억지로 쓴 것을 누르고 꾸역꾸역 마셨던 술이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으로 술이 달게 느껴지던 그날, 우리는 이별을 했다.


그렇게 끝에 와서야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가 됐고 모자람을 잘못을 실수를 나아가 서로를 알게 된 우리는 어리지 않을 때에 혹은 더욱 어렸을 때에 서로를 만났더라면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말을 눌러둔 채로

잘 지내

한마디로 새로웠고 쓰고 아팠던 연애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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