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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Oct 23. 2019

은유의 위로법

은유랑 나랑 손에 장난감 자동차 하나씩 들고 굴리며 놀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지루함을 견디고 있지만 은유는 나도 신나서 같이 논다고 생각하겠지. 갑자기 은유가 내 손에 든 자동차를 홱 낚아채더니 "은유 꺼야!" 한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엉엉 우는 연기를 했다. "엄마도 하고 싶은데~~~" 그랬더니 은유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눈빛으로 얼른 내 손에 자동차를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요 뇨석 공감능력이라는 것이 생긴 건가!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수시로 우는 척을 했다. 은유가 과자를 먹고 있으면 옆에 앉아서 훌쩍거리고, 은유가 날 조금만 아프게 하면 "으엥, 아야 해~~"하고 우는 척을 했다. 은유는 그럴 때마다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 손에 들려있는 것을 아무거나 다급하게 주었다. 그 다급한 표정이 얼마나 귀여운지... 어떨 땐 빨던 막대사탕을 내 입에 쑥 집어넣기도 하고, 손에 든 크레파스를 내 가슴팍에 누르기도 하고, 타고 있던 붕붕카에서 내려 나더러 타라 하기도 한다. (이제 좀 작작 해야지.)


은유의 빠르고 간결한 위로법. 왜 우는지, 내가 무얼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당장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 어떤 순간엔 그런 뻔뻔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세상에 많은 불행이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었다. 언젠가부터 가장 깊은 곳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새롭게 만난 적이 없었다.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편안한 어떤 모임. 그곳에서 숱한 불행을 지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었던 어떤 순간들을 상상하며 목구멍이 먹먹해졌다. 침묵의 순간 누군가 말했다. 이럴 때 초콜릿 하나 주면 된다고. 그 말이 은유처럼 귀여워 빙그레 웃었다.


저 아래 묻어두었던 돌덩어리 하나씩을 꺼내놓고 우리는 여느 날처럼 웃었고, 길고양이를 보고 귀여워했고, 맛있는 밥을 같이 먹었다. "괜찮아요." "당신 마음 알아요." "슬퍼하지 말아요." 같은 말은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지만, 집에 가는 길 나처럼 그대들도 따뜻한 이 시간이 좋았으리라, 홀가분했으리라 짐작한다.


고유글방 세번째 모임 후, 고수리 작가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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