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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Oct 24. 2019

아빠의 시


아빠 그저 아빠이기만 했다. 엄마가 나의 친구이자 동료이자 선생님이자 미움이자 사랑이자.... 그러는 동안에 아빠는 꾸준히 아빠였다. 아빠와 특별히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뚝뚝하긴 해도 늘 다정했다. 아빠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언제나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 가족의 모든 소식을 엄마를 통해 업데이트했었다. 오빠가 요새 무슨 고민을 하는지도 엄마를 통해 들었고, 아빠가 일로 힘들어한다거나 텃밭에 재미를 붙였다거나 하는 것도 다 엄마를 통해 들었다. 내 핸드폰에 아빠의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었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따로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 없었고, 어쩌다 집에 가도 엄마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다 어딘가로 나가시곤 했다.


엄마가 떠난 것은 남겨진 세 사람의 연결고리가 끊기는 일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조금 어색하게 서로를 연결했다. 별 일이 없으면 주말을 같이 보냈다. 이제와 알고 보니 오빠는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생각보다 멋있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평생 일을 좋아하셨단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밥벌이가 되면 지겨운 법인데, 그것도 그렇게 골치 아픈 일을 하면서. 그런데 아빠는 작년에 일을 그만두셨다. 말은 안 했지만 많이 걱정했다. 그 세대의 남자들이 퇴직 후에 우울증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챙기는 사람도 없는데, 집에서 종일 덩그러니 있을 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아빠마저 무너지면 어떡하나, 한동안은 전화벨이 울리면 괜히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잘 지내신다. 아니, 심지어 멋있게 사신다.


아빠는 시를 . 시 창작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나 들었던 이야기를 하실 때면 얼굴에 생기가 돈다. 아빠의 시는 너무 슬퍼서 볼 때마다 눈물이 나지만, 그래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든 나와야 하는 슬픔이 그리도 아름답게 나오니 얼마나 좋은.


나는 시 쓰는 마음은 잘 모르지만, 쓰면서 나아지는 마음은 안다. 나에게 글쓰기도 그런 거니까. 그게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아빠를 걱정하기보다는 응원하고 싶다. 응원의 마음으로 아빠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기일 (김시진)


까마귀 한 마리가 감나무 가지로 끌고 온

저녁 어스름에 붓끝을 적시어

그리운 이의 이름을 쓴다


상 차리고 촛불도 밝히었는데

검은 하늘엔 길 밝혀줄 달도 없고

오작교 만들어 줄 까마귀도 사라졌다


못 오는가 보다


잔을 내린다

눈물을 채워 마신다

목젖에 걸린 말 애써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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