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아침에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게 조금씩 익숙해져가기 시작했다.
아침 커피를 내리며, 마크와 시답지 않은 장난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밤엔 앤서니와 함께 풀장에서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3월 10일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선 이 모든 상황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니, 사실 이틀 전만 해도 인도로 들어가는 일정이었으니깐, 더더욱 말이다.
혼자 걷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아름다움을 나눴던 코사무이 이전의 여행
“혀니, 우리가 만약 뒤처지면 먼저 달려 알겠지?”, 마크가 시작도 전에 미래를 내다본 것 처럼 이야기한다.
“뭔 소리야, We are the One. 같이 가야 한다고!”, 어림도없는 소리.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이젠, 내 소소한 일상에 그들이 들어와있다. 헐떡거리는 숨을 함께 내쉬며, 내가 사랑했던 호수에서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눠마시고 있다.
항상 그래왔다. 스위스의 알프스산맥, 파리의 에펠탑, 프라하의 까를교 듣기만 해도 가슴 저린 곳에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볼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아름답다’가 아니라 ‘이 아름다운 광경을 함께 나누고 싶다’ 였다. 혼자 보기엔, 혼자 마음속에 담기엔 그 크기가 커다래서 말이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 멀리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녘을 보거나, 그런 노을녘을 보며 호숫가에 걸터앉아있을 때에도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해야겠다. 그냥 아무 나랑 나누고 싶은 건 아니다.
이젠 내가 걷던, 내가 뛰던 길을 나란히 달리고, 같이 땀 내고, 같이 해줄 사람들이 생겼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크와 앤서니에게 말했다.
“혼자 뛸 때보다, 같이 뛰니까 기분 좋은데?"
“나도야, 여기 진짜 좋다. 다음에 또 오자, 우리”, 뒤쳐진 앤서니 대신 마크가 말했다.
물론 힘에 부친 앤서니는 반쯤 넘게 뛰다 항복을 외쳤다. 그래도 끝까지 뛰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한테 뭐 하러 맨날 호숫가에 가냐고 했던 둘은 이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호숫가 뒤로 넘어가는 해 질 녘만 바라볼 뿐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과 함께.
“혀니, 너의 헤어밴드는 진짜 굳 초이스다.” 줄줄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마크가 말했다.
나의 탁월한 준비성에 웃음을 지었지만, 가장 중요한 걸 준비하지 못했다. 생수를 사느냐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가니, 벌써 풀장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곤 나한테 부탁하나 했다. “혀니, 냉장고에 있는 맥주 좀 가져다줘. 근데 두 개밖에 안 넣어서 …”
아차… 난, 미쳐 알지 못했다. 맥주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갑자기 심한 갈증이 몰려옴과 동시에 극심한 선택 장애에 시달렸다. ‘35도의 뜨거운 낮온도에 미적지근해져 버린 맥주를 그냥 마실 것인가 아님 물로 달랠 것인가’ 그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혀니, 내가 따듯한 거 마실게. 난 상관없어” 다름 아닌 앤서니였다. 괜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했지만, 반쯤 풀장에 몸을 걸친 뒤 갈라질 것 같은 목구멍에 들이붓는 맥주는 황홀함 그 자체였다. 모두 다 같은 탄성을 내뱉었다.
‘크으으으으으’
러닝은 20분이었지만 풀장에선 2시간은 있었는지 손발이 쭈글쭈글하게 변해버렸다. 방으로 들어가긴 아쉬워 선베드에 몸을 뉘어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곳저곳 켜져 있던 가로등 덕에 쏟아질 것 같은 별은 아니었지만, 이리저리 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별들도 혼자선 불을 켜지 않나 보다.
어쩌면 혼자보단 여럿이어야 밤새 불을 밝힐 수 있어서 일까?’
별들도 혼자보단 둘, 둘보단 셋
내 여행도 혼자보단 둘, 둘보단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