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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티혀니 May 16. 2020

Ep24. 태국이나 한국이나, 사람사는건 매한가지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블라인드 빗살 사이로 내려오는 희미한 빛내림에 눈을 떴다. 입에선 술 냄새가 가득했고 그 덕에 어제의 파티를 회상하게 되었다. 시간은 8시, 거의 4시쯤에 잠에 들었으니 평소 수면시간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건,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찍 기상하던 버릇 때문이다. 어떻게든 침대에 몸을 비볐지만 이미 꿈나라와는 많이 멀어진 뒤었다. 


터덜터덜 힘 빠진 두 다리로 간신히 계단을 올랐다. 아마도 여행 들어 부엌까지 가는 최장시간 기록이지 않을까 싶었다. 한 계단에 한숨씩 말이다. 



간신히 도착한 부엌에서 냉장고를 열어 물부터 쭉 들이켰다. 목구멍을 넘어 뱃속에서 멈추는 느낌에 아직도 어젯밤의 파티가 소화되지 않음이 느껴졌다. 잠시 멍하니 냉장고 앞에 서있다, 정신을 차리곤 이것저것 토스트의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곤 불변의 아침 토스트를 굽기 시작했다. 



“굿모닝, 현이”, 방에서 프리다가 나와 밝게 인사한다. 


나와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밝게 인사하자,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맥주 냄새를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선 꺼내놓은 재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남의 집에서 아침밥을 차려먹기란 눈치인듯, 두리번댔다


무심히 접시 두 개를 떠내곤, 스크램블을 만들려 꺼내놓았던 계란 두 개에 두 개를 더 깨 넣었다. 간단히 눈치를 챈 프리다는 자연스레 계란물을 휘저었다. 


띵! 소리와 함께 토스트 두어 개가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노르스름한 자태를 보아하니 아주 잘 되었다. 큼지막하게 버터 두 조각을 잘라 빵 위에 얹어놓았다. 그리곤 속을 달래줄 커피 한 잔까지. 



그렇게 아침 한상이 차려졌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이 먹는 아침이었다. 항상 11시쯤에 부엌에 올라오면, 이미 마크와 앤서니는 식사를 마친 뒤 여유로이 햇살을 맞이하고 있는 턱에 말이다. 그리곤 프리다가 냉장고에서 큼직한 그릇을 꺼내왔다.


김치였다. 휘둥그레진 표정을 지어 보이니, “김치 맛있어”라고 당차게 한국말로 얘기하곤 빵 위에 김치 한 조각을 올려 먹기 시작한다. 


빵과 버터, 그리고 김치의 조합


표정을 보아하니, 나름 괜찮은 조합인듯했다. 그렇다고 딱히 따라 하지는 않았다. 그저 외국인이 김치를 즐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야할까.






꽤나 잘하던 영어에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태국의 일상과 문화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내 나름대로 정리해두었던 태국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과 기억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고나 할까. 


참으로 신기한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생활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 



태국의 대학생활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프리다가 울분을 토하기 시작한다. 첫 입학 날 당시 어느 대학생처럼 설렘에 부풀어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입학 후 정해져있는 기상시간, 아침 구보, 그리고 절대로 앞을 보면 안 된다는 규칙까지 군대와 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듣자 하니 1주일간 대학생활 적응과 규칙을 위한 특별훈련 같은 거였다. 


호랑이 같은 선배들의 목소리 한 번에 신입생들은 부리나케 뛰어다녀야만 했고, 정말 군대처럼 화장품 또한 반입이 금지였다. 훈련소에서 몰래 선크림을 바르려고 숨기듯, 프리다도 브래지어 안에 몰래 스킨을 챙겨가져갔다고 한다. 귀여우면서도 세상 어디든 ‘걸리지 않으면 장땡’은 통하는구나 싶었다. 


커피의 얼음이 다 녹는지도 모르고, 빵의 열기에 녹았던 버터가 다시 굳을 때까지 프리다의 대학생활 이야기에 빠져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어젯밤의 피로는 잊고, 이야기로 가득 찬 아침을 맞이하였다. 





맥북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내 맥북과 앤서니의 넷플릭스가 만나 영화관이 되어버렸다. 밤부터 공포영화 노래를 부른 프리다 덕분에 극장이 열렸다. 


오후 3시, 컨저링 1, 장소 코사무이 풀빌라 극장


나란히 소파에 자리를 잡곤 베개 하나씩을 껴앉았다. 그 이윤 모르지만 적어도 난 숨기 위함이랄까. 공포영화를 보면 무섭다기보단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들이나 무서운 인형들에 내 몸도 함께 튀어 오른다. 아마도 베개가 없었다면 옆자리 소녀는 팔이 빨개져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화들짝 놀라길 1시간 즈음, 소파 위에 누워 남모를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즐기는 나의 모습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런 모습들이 익숙해졌다는 것과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는 모든 것들이 말이다. 튀어나오는 인형에 다 같이 움찔하기도 하고, 서로의 놀란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어대는 소년, 소녀들. 


이대로 나의 모습이 남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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