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티혀니 May 16. 2020

Ep25. 여행은 마치 태국에서 살사를 배우는 것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특이하게 오늘의 아침은 심플하다. 커피 한 잔. 그 이유인즉슨, 오늘 약간의 초대 아닌 초대를 받았기 때문.



라떼 한 잔


앤서니의 콜롬비아 친구가 자신의 호스텔에서 푸짐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놀러 오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곤 어젯밤 햄버거 패티의 메뉴 조사를 꼼꼼히 해 보내주었고, 난 푸짐한 점심상을 위해 아침을 스킵 하기로 했던 것이다.



다만, 다른 주전부리가 없어 커피가 심통이 났는지, 마시다 보니 또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왜 커피에서 요거트 맛이 날까


위엔 커피가 진해 몰랐지만 우유가 점점 올라올수록 시큼한 향이 강해졌고, 인지하는 순간 우유통을 열어 맛을 확인해보았다. 역시는 역시. 바로 하수구로 직행



유통기한을 보니 너무 짧은 우유를 샀던 탓에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상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아침은 사라져버렸다.



의심치 않고 쓰레기통으로 내던졌다.






적당히 느지막한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우린 나갈 채비를 하였다. 생각보다 멀지는 않았지만 꽤 높은 언덕을 오르길 반복, 우뚝 서있는 빌라를 발견했다. 그곳에서도 한 2층 즈음 계단을 올라서야 콜롬비아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빌라에서 보이는 바다 뷰의 풍경과 풀장, 그리고 여유 넘치는 레게 음악까지, 우리가 있었던 빌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는 그걸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러시아 가족의 호스트와 남미 친구들 몇몇, 창문에 적혀있는 메뉴를 보아하니 게스트들을 위한 아침 점심 뭐 그런 건가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빌라가 몹시 부러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이었고, 콜롬비아 친구는 양이 너무 많으니 천천히 다 먹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워낙에 양이 많은 마크는 속으론 코웃음을 쳤을 거다. 그렇게 음식이 나오길 10분, 모든 음식이 정말 커다란 대접에 나오는 거다. 뭐, 푸짐한 정인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바라보니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우리의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약간 맥 앤치즈 같은 매쉬드포테이토, 시나몬 호두 케이크, 마늘 가득 뭐, 고구마 채 볶음, 당근볶음, 비트 볶음, 피클 한 사발, 그리고 마지막 수제버거까지. 놀랍게도 이게 4000원이었다.



식사와 중에도 남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처음 듣는데 괜스레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레게 음악에 온몸 깊숙이 흥이 박혀있는 콜롬비아 친구들의 춤사위



‘나 왠지 남미랑 잘 맞을 것 같아’


그렇게 한 시간 즈음이 흘러 우린 절반도 채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그러자 호스텔 친구들이 우리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 종일 먹는다며 웃음 지었다. 다 못 먹으면 집에 못 간다고 장난쳐, 속으론 음식 남기는 게 매너가 아닐까 했었는데 아마도 이해한 듯 보였다.



반도 안먹었는데 벌써 배부르다... 큰일났다







식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앉아있던 흥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지나가던 아르헨티나 청년과 콜롬비아 친구들 이렇게 춤판이 벌어졌다. 화려한 스텝과 온몸으로 흥을 느끼는 듯한 웨이브 보고만 있어도 남미의 향기가 물씬 피어오르는 태국 호스텔이었다.



갑분남, 갑자기 분위기 남미


살사를 바라보는 나의 애정 어린 눈빛을 읽었는지, 갑자기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혀니, 일어나!”



그렇게 태국 허니문의 섬 코사무이에서 살사댄스의 강습이 시작되었다. “원, 투, 쓰리, 포”, 박자에 맞춰 스텝을 밟고 그다음은 엉덩이, 어깨를 마음껏 흔드는 거였다. 딱히 정해진 건 없다. 그저 발에 맞추어 몸이 흘러가는 대로 온몸을 리듬에 맡기는 것.





어느새 난 남미 친구들의 무리에 끼어 함께 남미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혀니, 언제든 놀러 와. 살사댄스를 추고 싶으면 말이야”



여기 친구들은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점심밥을 먹은 뒤 네게 톤 노래를 틀어두곤 춤을 추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잠시나마 ‘귀국행 비행기를 미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바다 한 입, 커피 한 입


센스 있는 아르헨티나 친구의 커피 대접으로 바닷바람을 맡으며 달달한 여유를 함께 나누었다. 서로 다른 나라의 이야기, 여행에서의 우여곡절, 계획 뭐 이야기하면 끝이 없었다. 다들 한 가지씩은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3가지나 되는 콜롬비아 친구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의 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봐봐, 아버지 성이 ‘F’고 네 이름이 ‘UKE’이야. 그럼 네 이름이 어떻게 돼?”


“FUKE”


“그치, 내 이름을 fuke이라고 할 순 없잖아. 그래서 그럴 땐 엄마 성으로 바꿀 수 있는 거야” 아주 명쾌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야기 이후에 내 이름은 ‘혀니 퍽’ 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우린 다 같이 바다로 이끌렸다. 매일매일이 Free인 나에게 ‘같이 바다 갈래?’라는 질문은 무의미했다. 왜냐고? 안 가면 뭐 할 건데, 당연히 가야지.



바위 가득한 해변에 여섯 명이서 비치타월을 깔곤 다 같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안경을 가진 둘은 저 멀리 다이빙을 하러 나갔고 나머지는 해안가에서 파도를 맡으며 금세 수다쟁이가 되어버렸다.


콜롬비아 친구가 어디서 빵을 주워오더니 바다에 뿌리기 시작했다. 왜 저러나 싶던 찰나, 내 다리 사이로 희미한 물살이 느껴진다.



“대박, 대박”



대박이다. 어항 속에서만 보던 열대 물고기들 수십 마리가 바다를 가득 채웠다. 어찌나 빠른지 떨어지는 빵이 내려가기도 전에 수면 위에서 낚아채기도 한다. 이 장면을 놓칠세라 얼른 뛰어나가 핸드폰을 들고 왔다. 아름다운 광경에 사로잡혀 물속에 빠드릴 걱정조차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음번엔 고프로를 들고 와 저 녀석들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형형색색의 열대물고기들


콜롬비아 친구들을 따라 저 멀리 깊은 곳까지 나가보았다. 거의 3-4m는 되어 보이는 곳에서 함께 바닥으로 내려가보았다. 빌린 물안경 덕분에 바다 밑 구석구석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잠시나마 인사 정돈할 수 있었다. 첫 프리다이빙 치곤 나쁘지 않았지만, 거의 20초마다 한 번씩 올라오는 것 같았다. 숨참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수영을 하면서 숨을 참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은 어둑해진 바다를 보며 겁이 나기도 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숨이 급하게 차올랐다.



그렇지만, 다음 세계여행에 있어 물안경은 내 필수 아이템이 되어버릴 것 같다. 굳이 챙겨야 할까 싶었지만, 그래야만 한다. 말미잘 사이에서 빼꼼히 얼굴만 드러낸 노모 친구들, 얼마나 큰지 모르는 조개,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커다란 물고기들까지. 지금까지 느껴온 아름다움과 확연히 달랐다. 마치 새로운 영역이랄까.






여행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항상 새롭다. 이곳 코사무이에 오기 전 항상 느꼈던 2프로의 부족함을 가득 채워주는 건, 다름 아닌 만남. 새로운 만남이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주고, 혼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 그런 일들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근데 왜 혼자 여행 다녀?”, 혼자여행을 즐겨하는 나에게 자주하는 질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나를 알아가고,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고.... 아니 사실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말했는지도 몰라. 얼마나 그런 시간들이 여행을 옥죄었는지 말이야.



이젠 이렇게 대답할래. “만나러 여행가”,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친구들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나누러 말이야.


마치 여행은 태국에서 살사를 배우는 것처럼.





이전 24화 Ep24. 태국이나 한국이나, 사람사는건 매한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