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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티혀니 May 16. 2020

Ep23.넌 이제 한국인 다 됐어 짜샤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오늘은 날이 있는 날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 텅텅 빈 코사무이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란 뜻이다. 항상 코사무이의 시크릿 장소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던 현지인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열기로 했다. 물론 우리 빌라에서 말이다. 참으로 하루에 무언가 약속이 있다는 게 새삼 기쁘기만 하다. 아무래도 집돌이도 아닌 내가 한 달 동안 섬안에서 박혀살았으니 근질근질할 만도 하지.





괜히 저녁에 파티를 한다는 생각에, 아침 먹은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급하게 파스타면을 삶았다. 아마도 뷔페 가기 전날 밤부터 벌써 뷔페에서 먹을 생각에 다음날 계획을 다 세워놓는 것처럼 말이다.



‘저녁 7-8시쯤이니깐 점심을 12시쯤 먹으면 배고파서 많이 먹을 수 있겠지?’



남은 음식은 용기에 담아두었다가 새로 야채만 추가해 먹는다.


괜히 들떠서인지 면은 또 왜 이렇게 많이 삶았는지, 참말로 파스타면은 삶으면 삶을수록 많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 고민하게 된다. 아니 이 정도면 외면 충분한지 알면서도 괜한 의심을 하게 된다. ‘조금만 더 넣자’ 그렇게 조금만을 두어 번 정도 하고 나면 2인분 이상의 파스타가 만들어진다. 어메이징 하지 않은가.



어제 만들고 남은 로제 소스에 야채만 설렁설렁 볶아내었다. 딱히 파스타가 좋아서 자주 해 먹기보단 극강의 가성비에 10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산더미같이 쌓인 파스타에 올리브 7조각이면 거뜬히 들어간다. 김치가 없으면 뭐라도 있으면 된다.



거짓말아니라 그릇이 얼굴 두쪽만하다.


배가 남산만해질때쯔음 앤서니가 홍차 한 잔을 들곤 테라스로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제쯤 파티 시작하냐고 물었더니, 9시 반이 넘어서 온단다.


“뭐라고? 왜 이렇게 늦는대… 그럴 줄 알았으면 지금 파스타 안 먹었지”



혼자 설레고 상상한 덕에 아침에 세워놓았던 철저한 내 계획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코사무이 나들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왜냐고? 뭔가 간식할 거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무작정 오토바이를 끌고 몸을 이끌었다. 목적지는 해 질 녘에 간에 바닷가에 도착하는 것, 어디로 가든 겁낼 게 없으니 골목골목을 쏘아 다녔다. 코로나 틈에 대부분이 문을 닫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 그리고 그 사이에 가끔 열려있는 소품 숍을 찾아내는 것도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다. 물론 단 하나의 소품 숍도 찾진 못했지만, 오늘이 아니었으면 들어가 보지 않았을 골목의 나의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늘에 조금씩 몸을 숨겨가는 태양을 보고 있자니 이젠 출발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잊지 않고 달달한 타이 밀크티 한 잔을 테이크아웃한다. 오랫동안 노을의 여운을 느끼려면 배고픔과 목마름 따위에게 관심을 뺏기면 안 된다. 그렇게 도착한 해변가, 조금씩 노을이 지고 있지만 태양은 아직 한창이라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불타는 바다위에 배 한척


동네 아이들은 배를 타고 다니며 이리저리 바다 위를 활보하였고, 드문드문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따금 바다에 비친 빛 위로 배 한 척이 지나갈 적엔, 괜히 멋진 사진첩이나 티브이 광고에서 볼법한 광경이 만들어졌다. 저기 저 배에 탄 사람들은 알까? 당신의 배 한 척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냈다는 걸 말이다.



조금씩 더욱 진해져가는 색

조금씩 기운을 다해가는지 열기는 줄어들고 줄어든 만큼 하늘에 여운을 남겨놓기 시작했다. 주황빛으로 점점 물들어가며 점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뻘건색으로 어떻게든 조금 더 하늘에 자신의 존재를 남겨놓으려는 듯, 더 새빨갛게 말이다.



피사체가 되어준 두 외국인


그 노력을 알아주는지 하늘도 답하기 시작했다. 쉽게 내어주지 않았던 새 파란색들이 조금씩 따라 변해간다. 어쩔 땐 핑크 같기도 보라색 같기도 한 이 오묘한 색깔의 하늘 앞에 넋 놓고 바라보는 외국인 두 명이 앉아있었다. 가끔은 서로를 보며 웃기도,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어깨에 기대어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 커플은 뒷모습으로도 행복의 여운을 내뿜었다. 아마도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함께 물들어서였을까. 저 태양의 빛처럼 새빨갛게 말이야.







오늘의 바비큐 파티는 조금 새로우면서도 신기한 경험이다. 오리지널 코리안 바비큐를 맛보겠다며 재래식 된장까지 카트에 담았다. 물론 김치가 빠지면 섭섭하지만, 현지인 친구 퀀트다가 두 팩이나 구했다며 가져온다고 했다. 거기에 상추까지



재래식 된장이 눈에 띈다. 그리고 김치까지



‘너네 오늘 전부 다 코리아에 빠져 허우적대겠구나’


나름의 사명감을 갖곤,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닭다리 12개, 삼겹살 두 덩이, 소고기까지 소금에 후추에 구석구석 틈 없이 뿌려주었다. 그리곤 된장에 양파와 고추 그리고 조금의 맥주를 넣어 걸쭉한 쌈장 소스를 만들어냈다. 이건 뭐 옛날 엄마 어깨너머로 쌈장을 만들던 장면을 기억해낸 거다.


커다란 한 상


마늘, 김치, 쌈장 소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하나둘씩 테라스로 모여들기 시작하며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파티를 시작했다. 한국인 셰프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모두가 움직였다. 자리에 닭 다리와 양파 한 덩이씩, 그리고 맥주까지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을 거다. 마크와 앤서니 셋일 땐 뭐 나이프도 필요 없이 한 손엔 닭다리 한 손엔 맥주를 들고 시작했지만, 특별히 오늘은 다들 점잖게 포크와 나이프로 약간의 격식을 차렸다.



그 와중엔 포크가 불편하다며 젓가락을 집어 든 스코틀랜드의 점잖은 한 쌈을 보아라. 어울리지 않게 작은 상추 위로 언밸런스한 커다란 삼겹살을 올린 뒤 쌈장 소스에 고추 몇 덩이를 더 얹는 이 센스. 이미 한국인 패치 완료이다.



내 쌈이 되리라곤 생각못하고 마늘까지 얹어줬다.


가족끼리는 쌈을 서로 싸준다고 하니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를 ‘오빠’를 외치며 스윗한 눈빛으로 다가온다. 오글거림을 뒤로하고 서로 쌈을 주고받았다.



‘넌 이제 한국인 다 됐어 짜샤’


왼쪽부터 손 출현 앤서니, 프리다, 퀀티다, 제스퍼, 마크, 나


이 모든 게 신기한지 다들 배꼽을 잡고 웃을 뿐이다. 하루에 맥주 한 병만 마시기로 했던 나와의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벌써 빈병이 수두룩했다. 모든 게 감사했다. 한국요리를 대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 것도, 저 멀리 바다 건너온 남모를 친구들에게 가족처럼 챙겨주는 퀀트 다와 프리다도, 그리고 영어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어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테라스로는 결코 끝나지 않은 파티였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정리한 뒤 하나 둘 풀장으로 맥주를 들고 내려갔다. 거기에 프리다의 깜짝 선물까지. 태국에서도 남부 지방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과일 ‘맛 파이’란다. 껍질을 꺼내면 망고스틴처럼 생긴 알맹이가 있고 사실 맛도 비슷하다. 어찌나 내 스타일인지 몇 개씩 집어먹다 아예 줄기 채 먹기 시작했다.


멋파이라고 한다.


우리의 밤은 사실 끝날 줄 몰랐다. 2층에서 다이빙을 하던 마크, 몽키매직 노래에 맞춰 괴상한 춤을 추던 앤서니, 맥주에 얼음을 타 먹는 두 소녀까지, 눈꺼풀에 어둠이 내려앉아 더 이상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없게 돼서야 일어났다. (아! 역시나 또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제스퍼도 있었다. )



잠들기 전까지 여운에 사로잡힌 난,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오늘을 쉽게 지나쳐버리지 않기 위해 밤새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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