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 손잡고
외갓집 가는 길은
한 폭의 시화였다
오월의 햇살과
오월의 산들바람
거대한 초록 물결을 이루는
청보리 밭에선 바스락바스락
행복한 웃음소리
그 소리와 늘 함께 하던
돌담 사이 해묵은 이끼는
다시 초록이 되었다
마당 한켠 커다란 앵두나무는
담장 너머 가지를 뻗어
마중의 손을 내밀고
높낮이가 서로 다른 장독대는
너나 할 것 없이 뚱뚱한 배를
봄볕에 반짝거린다
엄마는 엄마를 부르고
나는 할머니를 부르고
축담에 앉아 돌아보시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반가움의 미소로 춤을 춘다
할머니와 엄마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는 방안 여기저기
나란히 놓여 있던
못난이 인형이 무서워
도망 다니느라 바쁘고
그 시간의 흐름을 깨듯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내 손엔 늘 그래 왔듯이
사이다 한 병
새우깡 한 봉지
동전 200원
할머니께서 꼭 쥐어 주신다
다시 볼 수 없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생각나는
한 폭의 시화 같은
외갓집 가는 길
이제 먼 기억을 뒤져야만
떠오르는 내 어릴 적
마지막 오월의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