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 한글
우리나라의 고유 문자 한글, 훈민정음은 '신비로운 문자'라고 여겨진다.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한글만이 그것을 만든 사람과 반포일이 알려져 있으며,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라는 이름은 1910년대 초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한글의 '한'은 '크다'라는 뜻으로, 한글은 '큰 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훈민정음에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는 내용을 담은 《훈민정음 예의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훈민정음 예의본에 대해서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月印釋譜)》 첫 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널리 알려졌지만, 훈민정음해례본에 대해서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해 고대 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창살 모양의 기원설 등 여러 가지 억설이 존재했다. 하지만 훈민정음해례본이 출현되면서 이러한 억설들이 종식되었고, 발음기관 상형설이 제자원리였음이 밝혀졌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세종이 직접 서문을 쓰고, 정인지를 비롯한 신하들에게 글자에 대한 설명을 적게 한 것으로,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었다. 즉 이 책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밝혀지게 된 것이다. 1962년 12월 1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해례본은 목판본으로 2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우리나라는 훈민정음해례본의 발간 일을 계산해 양력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하고 1946년부터 매년 국가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빌려 글을 적었다. 그러나 한자의 획이 너무 복잡하고 글자의 개수가 많아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우리 조상들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차자표기법의 하나인 이두를 사용했다. 이두는 한자를 사용해 표기하는 것이므로 우리말의 소리를 특징적으로 나타낼 수 없었으며, 조사와 어미의 미묘한 차이를 반영할 수 없었다. 또한 먹고살기 바쁜 백성들이 한자나 이두를 익히는 것은 무리였고, 실질적으로 양반들만 글자를 사용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에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 즉 한글을 창제했다. 사실 훈민정음 창제는 출발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최만리 등의 학자들이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큰 나라를 모시는 예의에 어긋나며,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뜻을 굽히지 않고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눈이 짓물러 한쪽 눈을 뜰 수 없을 때까지 연구했다. 마침내 1443년이 되어서야 과학적인 글자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 빼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다(이러한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수비니겨 날로쓰매 편아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마다 이것을 쉽게 익혀 편히 사용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고 덧붙였다. 즉,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글을 몰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익히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이 처음 창제되었을 때 양반들은 한글을 상스러운 글자라며 '언문(諺文)'이라고 불렀다. 또한 소리를 나타내는 방법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며 '반절'이라고 무시하거나, 한문을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했던 궁궐과 양반집 여성들이 훈민정음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암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편리함이 널리 알려지면서 상민 신분의 남성들도 사용하게 되었고, 이후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훈민정음은 조선의 문자 체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는 단 28자로, 그 획이 단순해 백성들이 배우고 사용하기가 용이했다. 이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글을 배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한자로는 쓸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말을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한자는 중국인을 위한 문자 체계였기 때문에 음운 체계나 문법 구조가 한국어와 완전히 달라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을 완벽하게 적을 수 있게 되었고, 이에 새로운 차원으로 민족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단순하고 과학적인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미만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글은 매우 치밀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글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한글을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글의 자음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ㄱ·ㄴ·ㅁ·ㅅ·ㅇ'이다. 이 다섯 개의 자음을 기본으로 획을 더하거나 글자를 포개는 형태로 다른 글자를 만든 것이다. 즉 'ㅋ·ㄲ'은 'ㄱ'의 가로 및 세로에 획을 추가한 것이다. 따라서 다섯 개의 자음만 알면 다른 자음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사실 이 다섯 개의 자음도 외울 필요가 없다. 이 글자들은 발성 기관이나 소리가 나는 모습을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ㄱ'은 '기역' 혹은 '그'라고 발음할 때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이며, 'ㅇ'은 목구멍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이다. 이 때문에 대학 정도의 학력을 가진 어떤 외국인이든 1시간 만에 한글을 익히고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복잡한 모음 체계를 3개의 기호( · , ㅡ, ㅣ)로 표현했다. 이 기호에는 각각 하늘·땅·사람을 뜻하는 높은 철학이 담겨 있어 '천지인'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ㅏ'는 'ㅣ'와 ' · '를 결합한 글자이며, 'ㅜ'는 'ㅡ'와 ' · '를 결합한 글자이다. 이러한 천재적인 창조성 덕분에 한글은 휴대폰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자판에 한글을 다 넣어도 넉넉한 공간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쿼티 자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지만, 아직까지 기성세대는 천지인 자판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
한글의 가장 큰 특징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의 'milk[밀크]'에서 'i'는 한글의 모음 '[이]'와 비슷한 소리를 내지만, 'like[라이크]'에서 'i'는 'ㅏㅣ[아이]'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 즉 영어는 같은 글자라 할지라도 주변 글자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의 모음 'ㅣ'는 어느 글자와 결합해도 [이]라는 소리를 내며, 마찬가지로 'ㅏ'는 어느 글자와 결합해도 [아]라는 소리를 낸다. 이러한 한글의 특성 때문에 누구나 한글을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어 문맹률이 0%에 육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북한을 제외하고도 한글을 사용하는 나라가 있다. UN은 고유 문자가 없는 나라에 한글을 문자로 제공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주와 말라카이족에서 한글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남동쪽에 위치한 부톤 섬의 찌아찌아 부족은 부족 고유의 말을 적는 데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1년 동안 한글을 사용한 결과, 한글은 찌아찌아의 문자로 순조롭게 정책해가고 있다. 찌아지아의 모든 말을 한글로 옮겨 적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도 쉽게 한글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을 채택하기 전 찌아찌아 부족은 다른 인도네이사 사람들처럼 로마자와 아라비아 문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족 고유의 말을 표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우바우시 까리야바루 초등학교 교사 아비딘은 "한글을 빌려다 쓰는 이유는 한글이 다른 글자보다 정확한 발음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지금까지 찌아찌아 말은 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글자, 영어, 인도네시아어, 라틴어 등을 접목시켜 봤고 중국어도 배워봤지만 한글을 도입하고서야 (찌아찌아 말을) 정확히 표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글이 국문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은 반포 450년 후인 갑오경장(1894~1896년) 때이다. 우리나라는 한글 창제를 기념하기 위해 훈민정음해례본의 발간일을 계산해 양력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과거 한글날은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한글의 '가갸거겨'에서 다온 것이다. 1928년이 되어서야 지금의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글에 대한 예찬은 끝이 없다. 오늘날 유네스코가 문맹퇴치에 기여한 이에게 주는 상을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라고 명명한 것만 보아도 훈민정음, 즉 한글이 세계 문화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글 및 한국어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파괴하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역설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말과 글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세계에서 가장 신비하고 과학적인 문자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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