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떠나는 타임슬립 여행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물건이 있는 반면, 신문물을 대신해 손 때 묻은 추억 속 물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한다. 삐삐도 카세트테이프도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물이 됐으나, 그 시대를 동고동락했던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 타임머신을 타고 빛바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플로피 디스켓은 PC가 대중화된 초기 사용된 저장방식이다. 초미니 사이즈의 USB 메모리나 대용량을 저장할 수 있는 외장하드가 등장하면서 사라진 추억의 메모리 장치이다. 플로피 디스켓은 1969년 IBM에 의해 최초 출시됐다. 당시 매우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던 플로피 디스켓의 최대 용량은 고작 1.44MB이니, 32기가의 초소형 USB나, TB 단위의 외장하드에 비하면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저장 공간이다.
신용카드가 없던 그 시절, 버스정류장 앞 매표소에서 토큰이나 회수권 등을 구매해 버스를 이용하고, 지하철승차권으로 탑승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자동으로 카드를 인식하는 시스템도 없기 때문에 등하굣길이나 출퇴근 시간대가 되면 기사 아저씨는 매의 눈으로 토큰박스를 체크한다. 토큰 등은 1996년 교통카드가 도입되면서 2002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2008년엔 주요 도시 대부분이 승차권 판매를 중단하게 됐다.
볼마우스란 마우스 밑면에 있는 고무 혹은 플라스틱으로 된 볼을 굴려서 그 마찰로 볼의 이동거리와 방향을 감지하는 마우스를 말한다. 볼마우스는 광마우스가 보편화되기 전 주로 사용됐던 마우스로 볼은 정말 공처럼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볼을 꺼내 닦아주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요즘은 기존의 볼마우스에 휠의 기능이 추가된 휠마우스나 빛으로 움직임을 감지하는 광마우스, 전자펜마우스 등 다양한 입력장치가 사용된다.
신용카드 초창기 보급됐던 신용카드 결제 장치로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물건이다. 카드 임프린터(Imprinter)난 카드를 대고 누르면 매출전표에 카드의 양각부분인 카드 번호화 유효기간 등이 인쇄되는 도구이다. 이 전표에 구매자가 사인을 하면 승인이 되는 시스템이다. 당시 이마저도 없는 가게는 종이 밑에 카드를 놓고 볼펜 등으로 문질러 카드 결제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고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만화 풍선껌은 과거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를 담아낸 껌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방과 후 학원이나 게임방을 찾는다면, 과거 우리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여지없이 학교 앞 문방구로 달려간다. 만화 캐릭터로 가득한 풍선껌 코너는 필수 코스였다. 가지각색의 만화 캐릭터로 화려한 풍선껌에는 판박이도 가능해 저마다 소중한 곳에 스티커를 정성스레 붙이곤 했다. 큰 풍선 만들기 놀이도 가능한 만화 풍선껌은 아이들의 사랑이었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기 전 성행한 무선호출기를 당시 ‘삐삐’라고 불렀다. 무선호출기는 1990년대 상용화돼 1997년에는 약 1500만 명이 가입됐다. 호출기에 연락 받을 번호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숫자로 된 암호를 보내면 수신자가 이를 확인 후 유선 전화로 연락을 취한다. 또 음성메시지를 녹음할 수도 있어서 유선전화를 통해 내용을 확인하기도 했다. 지금은 메디컬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템이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팝송이 흘러나오면 두 손가락으로 녹음 버튼 두 개를 동시에 재빠르게 누른다. 새벽 두 시가 지나도록 마왕 신해철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워크맨을 끼고 잠이 들곤 했다. 지금은 스마트기기에 음악 파일을 저장하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손쉽게 음악을 감상하는 시대이다. 워크맨도 카세트테이프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소년소녀들의 감성을 보듬어 줬던 따뜻하고 열정적인 음악은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전해졌음을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극장이 많지 않았던 80년대에는 동네 비디오대여점에서 빌려온 비디오테이프를 비디오플레이어를 통해 보는 것이 가장 즐거운 문화생활이었을 것이다. 비디오플레이어는 TV에 연결해서 볼 수 있었다. 물론 당시 TV는 지금처럼 슬림 하지 않은 두툼한 브라운관 TV였다. 또 비디오플레이어에는 되감기 기능이 있었으니, 비디오대여점에서 빌려온 비디오테이프는 반드시 되감아서 반납하는 것이 원칙이다.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삶을 많은 부분 바꿔놨다. 전화번호부도 그중 하나이다. 유선전화는 전화번호부를 저장하는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가정집, 사무실, 공공기관, 공중전화 등 어느 곳에서도 비치된 베스트셀러는 바로 전화번호부였다. 연락이 끊긴 친구를 지금은 소셜미디어나 메신저를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채변봉투 제도는 건강과 위생상태를 점검해 기생충을 박멸하자는 취지로 1960년대 학교를 중심으로 실행됐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의 95% 이상이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였다. 각 학급별로 선생님이 각양각색의 변이 든 채변봉투를 수거하는 풍경을 요즘 학생들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봄, 가을 연례행사로 회충약을 챙겨먹고, 때가 되면 채변봉투를 제출하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기생충박물관이 생기고, 이로운 기생충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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