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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18. 2024

못해도, 느려도 괜찮아

이해받으며 일 한다는 것

0.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사진을 한 장 주웠다. 한국에서 사회 생활 좀 해 봤다면 아마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까. 내가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것도, 직장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도 어쩌면 저 한 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뭘 어떻게 해도 구박 받고, 핀잔을 듣는다. 꼼꼼히 하느라 느리면 느리다고 욕 먹는데 빠르게 하려다 실수라도 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욕 먹었다.


서브웨이에 알바하러 나갔다가 고작 이틀째만에 샌드위치를 1~2분 안에 싸서 포장까지 마치라며 왜 이걸 못하냐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세 시간 일 하고 어떻게 세달 일 한 사람처럼 샌드위치를 싸나요. 한참 어린 매니저가 꼴에 샌드위치 좀 몇 달 싸봤다고 신입 구박하는 게 같잖았다.


매장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차라리 내가 대표고 점장이라면 내 방식대로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실상은 아니니까. 나에게 주어진 권한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상황에서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물어보면 물어보는 대로 귀찮아하고, 내 나름대로 해결해보려 하면 왜 멋대로 해서 일을 키우냐고 욕을 먹었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일 머리가 좋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처럼 둔한 사람은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고역이었다. 이렇게 해도 욕 먹을 것 같고, 저렇게 해도 욕 먹을 것 같으니 아주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나는 남 밑에서 일하지 말아야지. 고딩 때부터 했던 다짐이다.


신입 교육생에게 온갖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 또라이 매니저한테 데이고 나니 어디에 발을 내딛기도 겁이 났다. 돈 좀 벌자고 이렇게 갖은 수모를 당해야 하나, 내가. 돈보다도 못한 인간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비참해졌다. 이력서에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적었더니 아무도 연락을 안 준다. 한국 기업이 원하는 건 짱돌을 던져도 타격 없는 로봇이다. 그들은 "인간"을 원하지 않는다. 착실하게 돈 벌어다 주는 기계를 원한다.




1.

큰 호텔이라 그런지 신입 교육 매뉴얼도 교부 받았다. 매뉴얼은 진도가 빠른 듯 하면서도 느린 듯 묘한 느낌이었다. 총 7일 짜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이었다면 포스기 만지는 것부터 시키고도 남았을 터였다. 지난 주에 입사했는데 아직도 내 포스기 비밀 번호가 없다. 바쁠 때 계산대 지원에 투입되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도했다. 한국이라면 분명 알바 경력이 4년이나 되면서 왜 아직도 못하냐고 욕 먹었을텐데. 애초에 한국식 포스기였으면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았을 테고, 현금 사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테니 당연히 더 빨리 배웠을 것 같긴 하지만.


처음엔 나에게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빨리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내가 일본인이 아님을 모르는 듯 했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답답해하는 게 보였으나 화를 내진 않았다. 또박또박 천천히 얘기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대충 못 알아들었어도 알겠다고 대답하는 습관이 들어서 "네" 가 먼저 나왔다.


사실 언어 불문 집중하지 않으면 말을 한 번에 못 알아 듣는 편이다. 멍 때리고 있을 때가 대부분인데 갑자기 말을 걸어 오면 한 귀로 들어와 다른 귀로 빠져 나간다. 되묻는 게 일상인데 무언가 일을 할 때나 부탁을 받았을 때도 못 알아 들어서 되물으면 혼이 날까 두려웠다. 일단 먼저 알겠다고 한 다음, 뇌에 남은 정보로 유추해 처리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냥 눈치로 해결하는 거다.


말귀를 못 알아 들음. 일머리 없음. 가는 귀 먹음. 개노답 삼형제 다 모인 마당에 일본에 오니 외국어라 정도가 더 했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현지인들은 발음을 하도 뭉개 말하는 탓에 긍정문인지 부정문인지도 헷갈릴 때가 많았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이해해 주었다. 일본에 온 지 얼마 안돼서 아직 알아 듣는 게 힘들어요. 하면 다들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저들끼리 하듯이 내게 온갖 축약어를 써가며 빠르게 얘기하던 사람도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걸 알자 템포를 낮춰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볼 때마다 하도 이렇게 하면 안되고 저렇게 하면 안되고 뭐라 뭐라 하길래 찍혔나 싶었는데, 그냥 외국인임을 몰랐던 모양이다. 한결 친절해진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2.

타지에서 굴러가며 느끼는 서러움도 컸지만 혼자 일본어를 공부해 먼 곳까지 와서 일하는 나를 장하다고 해주는 어른들도 있었고, 일어 영어 한국어를 구사하는(것처럼 보이는)나를 대단하다 말해주는 동료들도 있었다. 느려서 미안하다, 못해서 미안하다, 이것 저것 물어보고 귀찮게 해 미안하다 말할 때마다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로 괜찮은 건지 외국인 신입 특권인지는 몰랐으나 이유야 어떻든 감사했다. 과자 포장 속도조차 엄청 느린데도 아직도 포장하고 있냐며 핀잔을 주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던 건 이해가 필요해서였다. 이해도 존중도 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탈조해야지, 마음 먹게 된 건 그게 다 종족 특성같아서 그랬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나를 숨막히게 하겠구나, 싶어서.


여기선 채식주의자라고 말해도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되는지를 묻지, 왜 고기를 안 먹냐며 고기를 안 먹으면 허약해진다고 오지랖 부리거나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의 배려 속에 지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일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해와 존중이 기본 정서가 될 순 없을까.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한국 땅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마음에 들고 한국어도 다른 언어와 써가며 비교해 보니 매우 효율적이라 자부심이 든다. 이상한 애국심을 가지고 싶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숫자를 말할 때 짧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삼천육백이 산센롯뱌쿠나 쓰리따우전드 식스헌드레드 따위로 늘어나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말이 좀 샜지만 요는 고작 사람들 때문에 한국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끼리 "다른 사회"를 만들고 "달라지는 사람들"을 늘려나가고 싶다.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인간적인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느려도, 못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유토피아가 바로 여기서부터 번져나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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