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온 후로 더 많이 고민했다. "나는 무엇을 잘하고, 앞으로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될까?" 주변의 리더들과 비교하면 특별히 더 똑똑한 것도 아니고, 어떤 영역에서 대체하지 못하는 강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해내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팀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컬처디자인 팀장으로 들어왔지만, 그 일만 할 수는 없었다. CS도 보고, 경영지원도 하고, AI 제품 개발을 위해 연구도 했다. 교육사업으로 방향을 틀면서는 커리큘럼을 개발과 운영도 했다.
제품 초기에 판매가 잘 되는 것 같았을 때는 수강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몇 달 동안 카카오톡으로 상담하는 일을 진행하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그렇게 친구로 등록해서 대화 나눈 사람들만 5,000명 정도 되었다. 어쩌다 친구와 만나서 밥을 먹을 때도, 낮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일에만 매달렸었는데 친구들은 나를 보고 미친놈이라고 했다.
가끔 동료들끼리 칭찬하는 시간이 오면 내게 "여러가지 일에 투입할 수 있고, 묵묵히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게 장점"이라고 종종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나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다. 좋게 이야기하면 멀티 플레이어지만, 어떻게 보면 잡부로,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 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다 2년 전 부터는 생각을 바꿨다.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게" 나의 유일한 장점이자 좋은 장점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에너지를 투입하고 집중력 있게 하는 것도 생각보다 재능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잘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건 불안만 줄 뿐이지만,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면서 어떻게든 되도록 만들어 나가면 성장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 에너지를 잘 유지할 수 있게 운동도 꾸준히 하고 감사일기도 쓰고 여러가지 노력들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안 그러면서 스스로에게는 너무 관대하지 않고 몰아붙인다고만 피드백받던 내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건 꽤 큰 변화였다. 그리고 이제야 내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오든지 간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겼었다.
그런데 *중증 근무력증이 찾아 와버렸다. 중증 근무력증은 신경과 근육접합부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인데, 신경신호가 근육에 전달되지 않아 근육이 약해지고 쉽게 피로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휴식을 잘 취해야 하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환우 분은 중증 근무력증은 잘 쉬고 한량 같이 살면 괜찮은 병이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예전보다 조금만 일하면서 잘 쉬면 되고, 약만 잘 먹으면 대부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그런데, 나에게는 이 병이 나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것 같아서 한동안 괴로웠다. 더 이상 "어떻게든 해낼 수는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를, 내 아이덴티티를 빼앗긴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상품가치도 추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귀병에 걸리면 병원비를 90% 할인해주는데, 나의 가치도 그만큼 할인된 것 같아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어떻게든 해낼 수 없는 나는 어떤 쓸모가 있는 사람일까. 머릿 속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이 계속 떠올라 이 병이 나를 향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이제, 스스로의 재능을 인정하고 더 격려해주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 마음을 갖자마자 그 재능만 딱 꺾어간다는 게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 상황에서 긍정적인 부분들을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다가 정작 나 자체를 잃어버릴 뻔했다. 어차피 이렇게 끝까지 달리다가는 금방 죽었거나 더 큰 병에 걸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지 억울했는데, 반대로 이걸 깨닫게 해주고 더 살리려고 신이 병을 줬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목표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내는 삶에서, "아주 작게 느껴졌던 일상이 내 삶의 가장 큰 목표가 되는 삶"으로 바뀌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는 것들을 하나 씩 해 나가면서 적응하고 만족하는 삶으로 모드가 바뀐 것이다. 병 덕분에 일상과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그 어떤 때보다 간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잃어 버리고 보니, 아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지금까지 어떻게든 달성하고 싶었던 것들보다 훨씬 소중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일상을 보내는 게 목표인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의 물체를 하나의 물체로 볼 수 있는 것. 원래의 보폭 대로 쉬지 않고 걷는 것. 두통에 시달리지 않는 것. 너무 당연해서 목표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이 그 어떤 목표와 꿈보다 어렵고 소중했다.
일상에서 잃어버린 부분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일상에서 아직 잃지 않은 많은 부분들을 생각해보면 매일매일이 너무도 감사한 삶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확신한다. 꼭 무엇을 해내야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는 가치있는 것이라고.
가장 오래 함께 일하고 의지했었던 동료는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지 말고, 가끔은 안된다고도 해보고, 어렵다고도 해볼 것. 잠 좀 덜 자고 끼니 건너 뛰면 가능하겠다 이런 생각 하지 않을 것. 좀 더 이기적으로 스스로를 챙길 것'을 당부했다. 너무 나를 잘 알고 하는 이야기라 반박할 수 없었다.
동료의 말처럼 우리는 일상을 잘 보내는 훈련이 필요하고, 가끔은 이기적일 정도로 스스로를 챙기고 사랑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병이 오지 않았다면, 고집 센 나는 또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해내는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조금씩 무리하려고 하면서 이전과 같은 삶으로 관성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커리어 시장에서 어떻게든 해낼 수 없게 된 나의 쓸모는 예전보다 분명 떨어졌을 지도 모르지만,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사는 삶의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가 없다고.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만큼 해 나가는 삶과 그런 내 자신도 그런대로 가치가 있다고.
* 중증근무력증(Myasthenia Gravis): 10만 명 중 10명 정도 발생하는 희귀 자가면역질환. 주요 증상은 근육 약화와 쉬운 피로감. 눈꺼풀 처짐, 복시 등 안구 증상으로 시작해 전신으로 진행 가능. 팔다리 근력 저하, 걷기 어려움, 삼키기 곤란, 말하기 어려움 등 발생. 증상은 변동이 심하며 휴식 후 일시적 호전. 스트레스와 연관성 높음. 완치는 불가능하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증상 조절 및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 과거 40% 이상이던 사망률이 현재 5~12%로 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