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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Sep 08. 2024

누가 내 포크에 아령을 달아놓았을까

포크가 무거워서 무서웠던 날

병을 진단받고 몇 주 뒤, 아침부터 눈 주변이 터질 것 같이 아프고 두통이 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 마치, 전날 소주를 4병 이상 마신 다음 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통증이었다. 약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침치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낯선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더 커져갔다. 아파서 눈물이 나기는 처음이었다.


약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가 12시 반쯤 깨어났는데, 통증이 너무 날카롭게 올라와 몸을 괴롭혔다. 몸에서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나면서 구역질이 났다. 일단 화장실에 가서 양치라도 하고 씻으려 했는데, 몸이 너무 아파서인지 동작이 느려지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화장실에 나와 드라이어를 들어 올리는데, 드라이어가 무겁게 느껴져서 놀랐고 순간 얼어붙었다. 몸이 안 좋아서 혹은 심리적인 요인일 거라 생각했다. 그때, 아내가 지금 밥을 다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씻으러 가서 이렇게 늦게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살면서 우는 날이 손꼽았는데, 우는 것도 중증 근무력증의 한 가지 증상이나 부작용일까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아침부터 아이를 케어하고, 아픈 나를 위해 청소하고 밥하고 날 돌보느라 너무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 거 아닌 말에 무너지고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는 내가 마치 타인인 듯 느껴졌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화장실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기가 어려웠고, 이런 상태인 내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마음까지 무너지는 내가 무력하고 하찮아 보였다. 이게 정말 나인가. 앞으로 받아들여야 할 나의 모습일까.


조금 진정된 뒤에 포크를 집어 파스타를 집어 들었다. 순간, 포크가 너무 무거워서, 면을 들지도 못하고 내려놓았다. 마치, 포크에 아령을 매달아 둔 것 같았다. 방금 전 드라이어가 무거웠던 게 단순히 착각이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중증근무력증은 보통 안구형으로 시작해 전신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약 6~70%로 높다고 한다. 전신형 중증근무력증 환자들은 심한 경우 손발에 힘이 빠져서 양치질을 하기 어렵거나, 머리를 감기 어렵거나 하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꽤 있다고 알고 있었다.


진단받은 후 어떻게든 전신형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와 고객사의 배려로 예정된 모든 강의와 업무를 취소하고 잠깐 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호전되는 기색은 없었고, 눈 이외에도 증상이 생기는 게 확실해 보였다. 나중에 선생님께 여쭤보니 졸리 테스트(반복 신경 자극 테스트)에서 이미 손에도 증상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막을 수 있는 것도 없는 거 같아 더 무력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하나씩 못하는 것들이 계속 생기게 되면, 앞으로 더 미안함과 무력감이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이 상황 자체가 또 억울하고 섭섭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증상과 통증이 생겨나는 게 힘들고 무서웠다. 커뮤니티에 물어보니까 안압이 너무 올라서 그럴 수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안압이 올라도 이 정도로 사람이 아플 수 있는 것일까.


이제,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다리에도 힘이 빠지는 것인가. 그러면 얼굴이나 다른 곳에도?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몸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 온 것인지, 다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결국, 포크에 아령을 달아놓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고, 내가 매달아 놓은 것 같은 수백 개의 포크들이 나를 사정없이 찔러대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퇴사하는 팀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성실하고 좋은 팀원이었는데, 사실 내가 별다르게 해 준 것은 없어 마음속으로 늘 미안함을 가지고 있던 팀원이었다. 메시지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저와의 대화를 통해 저도 모르는 저의 잠재력을 확인해 주시고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셔서 있는 동안 정말 좋은 경험과 성과를 내고 가는 것 같습니다.

여러 회사들과 면접을 보며 느끼는 점은, 어쨌든 내가 가까이서 보고 배울만한 리더십과 업무분위기만큼은 따라올만한 곳이 많이 없다는 것인데요.

좋은 회사 만드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이젠 쉬엄쉬엄.. 무조건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팀을 만들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스타트업으로 왔다. 나름대로 그때는 좋은 팀의 기준을 스스로 세웠고, 무엇이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언젠가 첫 회사의 사수가 우리 팀원에게 'OO이가 인사담당자로 있을 때, OO 이를 회사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니까요.'라고 이야기해 줬는데, 그때 내가 왜 괴로운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좋은 팀원이 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어려웠다. 내 역할과 능력에 스스로 자괴감도 많이 느끼고,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어쩌면, 몇 년간의 스트레스와 마음고생의 가장 큰 부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좋은"이라는 단어만큼 쉬우면서 어려운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좋은"이라는 말은 취향을 탄다. 누구에게는 가장 좋은 회사가, 누구에는 최악일 수도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동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동료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판단의 기준과 주도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너무 고통받고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동안은 내가 무엇을 위해 여기 왔고, 이렇게 살고 있는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회사 만드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다시 나를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내 마음을 부끄럽게 했다. 그 간의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고마우면서도, 내가 정말 예전에 인사담당자로서 가졌던 마음과 같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챙기고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역할이 바뀐다고, 그 마음까지 바뀌어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프고 나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와 같은 병뿐만 아니라, 희귀병을 가진 분들, 혹은 그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고, 듣게 되었다. 한 동안의 성공과 성장만을 생각했고, 그게 모두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개개인의 삶과 이야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왜, 6명밖에 안 되는 스타트업에서 조직 문화를 담당하는 사람을 초기에 뽑으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회사가 사업을 잘 성공시켜도 내가 다녔던 회사의 문화와 같을 까봐 두렵다, 그것이 실패인 것 같다”라고 답변을 들었다.


그 답변과 눈빛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의 눈빛은 언제나 멋있다고 생각해서 합류를 결정했었다. 브레이크 없이 그냥 내달리기만 했다면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어도 결국 내 꿈은 실패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병이 생긴 것은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그래도 다시금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게 해 준 것은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마음만은 예전의 더 건강한 내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포크 드는 게 어려울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다면 사람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더 좋은 동료가 되자고,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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