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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Aug 20. 2024

희귀병에 걸린 것보다 더 지옥 같았던 것

부정과 분노의 단계, 그 즈음의 이야기

  나의 복시(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증상) 증상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추측했다. 보통, "어쩌다가..."로 시작하거나 "그래서 그런 거 아니야?"로 시작하는 말들.


내가 거의 매일 아침에는 수영이나 달리기를, 점심시간에는 남산을 올라가는 걸 아는 사람들은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물었고, 어떤 이들은 다이어트와 연관 지어 생각하기도 했다.


가끔은 나의 성격(좋게 말하면 세심한, 나쁘게 말하면 예민하고 일할 때만 완벽주의적인)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헬스대시보드도 만들어 매일 기록했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서 정확히 답변하기 어려웠지만, 어쩐지 마음이 좋지 만은 않았다. 알 수 없는 서운한 마음이 가끔 들기도 했다. '결국, 이 모든 게 네가 잘못 해온 탓 아니야' 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는데, 노력들이 부정당하는 거 같아서'. 모두 나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이었을텐데, 그 땐 왜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증상에 대해 "도대체, 왜?"에 대한 질문과 추측을 들을 때마다, 지금은 좀 더 많이 무리하고 있고 스트레스 받기 때문이 아닐 까라고 생각했다. 나를 아껴주는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무리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몸 챙겨가면서 하라고. " 그리고 그땐 나의 몸 상태도 모르고, 나를 너무 믿었다. "괜찮아, 그래서 열심히 운동도 하고, 가끔은 식단도 하고, 일기도 쓰면서 관리하고 있어.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지금만 지나면 모두가 더 나아질 거야."





  그리고 중증 근무력증 진단을 받았다. 살면서 대부분의 일은 조금 엇나가거나 실수를 해도, 다시 열심히 해서 돌리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완치는 안되고 되돌릴 수가 없다고?', '나는 조금만 더 이러다가 말 생각이었는데, 이미 너무 늦었다고?' '나, 이렇게 안되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관리했는데?' 그 사실을 무던히도 받아 들이기 노력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비참했다.


이제 곧 다가 올 30대 끝의 성적표가 마치 이 병인 거 같아서. "혼자 다 열심히 하는 척 그렇게 살더니, 결국 바보같이 그렇게 되었구나. 역시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사람들이 수근 거리는 것만 같아서.


이제, 웬만한 일들이 닥쳐도 그 안에서 긍정적인 부분들을 보고, 웃어 넘길 줄도 아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단지, 이런 정도의 일이 아직 닥치지 않아서 그랬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17살 아이처럼 취약하고, 분노하고 억울함에 눈물 흘리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꿈이길 기도했다. 나처럼 평범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이런 확률 낮은 일이 나타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런 꿈들이 있지 않은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악몽이었는데, 역시 꿈이었어. 깨고 보니 정말 다행이야. 점심 때까지는 분노하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저녁 무렵에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는 다시 꿈이길 기도했다.


진단 받은 후 가장 처음 진단 약은 메스티논이었다. 빠르게 좋아지는 사람들은 메스티논만 먹고도 몇 시간 뒤, 혹은 며칠 뒤에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전혀 효과가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복시 외에도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새로운 증상이 하나 둘 생겨났다. 근무력증에서 눈에 나타나는 증상은 안구형, 몸에 나타나는 증상은 전신형이라고 하는데 결국 전신형 증상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는 때면, 몸도 극심하게 안 좋아진다는 걸 알게 됐다. 근무력증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 심한 스트레스 상황이나 무리하는 환경에서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었다.


그럴 때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 동안 나를 극심한 스트레스 속으로 머리채를 들고 집어넣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정말 사소하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냐며, 전화로 민원을 넣겠다고 한 시간 반 넘게 욕을 퍼붓던 고객의 협박 전화까지 다시 떠올랐다. 어떻게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코끼리만 생각나는 것처럼 떠올리지 않으려 할 수록 더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대상이 다른 사람이건 나이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미워한다는 건 무척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늘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그걸 그냥 선택하고 참아내고 힘들어 하고 받아들인 건 나 아니야? 선택하지 않았으면 됐잖아. 누가 뭘 했든 스트레스로 내가 안 받아 들였으면 그만인데? 니가 이렇게 몸을 막 써온 거잖아?' 마지막에 결국 가장 혐오하게 되는 건 나 자신이었다. 진단 받고 몇 주 간은 몸도 더 안 좋아져 갔지만, 무엇보다 괴로운 건 마음이었다.


병을 진단 받은 날 진단서가 지옥행 티켓이 되어, 지옥 속으로 입장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음으로는 비관하더라도, 머리로는 병을 이해해야 했다. '이성적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기'를 실천해야 했다. 구글, 네이버, 유튜브에 근무력증 키워드로 모두 찾아보고, 오픈채팅방 같은 커뮤니티에도 모두 들어갔다. 심지어, AI 챗봇을 열심히 만들고 있을 때라 병에 대해 물으면 해외 논문과 사이트를 기반으로 출처를 알려주고 답변해주는 챗봇까지 만들어 물어봤다.


https://chatgpt.com/g/g-d6Rct4ZAI-hyigwibyeong-jeongboreul-alryeojuneun-iseoni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브런치나 블로그에 투병 일기를 적었던 분들의 글이었다. 병의 증상, 치료법이 아니라 병을 알게 되기까지 여정들과 감정 변화, 그리고 상태의 변화들이 생생하게 적혀 있어서 가장 잘 이해가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


모두들 비슷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정보가 없고, 안과만 뱅뱅 돌아다니다가 확진 받기까지도 보통 3년 이상 걸리는 병. 나 같은 어려움이나 시행착오를 겪게 하지 않으려고 글을 적는다고. 우리 병은 환자들마다 증상이 너무 다르고,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후에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이니, 환우 분들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적는다고.




  

  출근 전에는 운동하고, 출근 후에도 스터디 모임을 다니고 성실하게 시간을 쪼개가며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근무력증이 찾아와 직장을 그만 두게 된 환우 분의 사연. 중학생 때부터 진단을 받아 이제 스물 한 살인데 약도 치료도 듣지 않아 매우 고생하고 있는 환우 분의 사연.


대학생으로 한창 누릴 시간인데 병원에 입원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퇴원 후 아이스티 하나 먹는 게 기적이고 행복이라는 환우 분의 사연까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의 글을 읽으면서, 동지애를 느끼고 그 분들의 삶 속에 잠깐 들어가 위로받기도 하고, 두려움과 안타까움도 느꼈다.



다른 분들도 처음 병을 알게 되었을 시기의 무렵 이야기를 읽어보면, 나처럼 "왜, 그게 나여야 하는지?" 부정하거나 분노하는 분들이 많았다. 스위스의 죽음 학자인 퀴블러로스는 사람들이 죽음이나 불운한 일을 선고받고 인지하는 단계를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5가지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가 부정과 분노의 단계가 극에 달한 시기였던 것 같다.





  병을 알게 되고 한 달 뒤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뜬금없이 타이어 전문 할인점 간판에 크게 김구 선생님의 명언이 적혀 있었고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내 안의 지옥을 만든 건 근무력증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마음이었을까. 병을 알게 되고, 이틀 뒤에 아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중고서점에 가고 싶다고 했었다. 가장 큰 목적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다시 읽는 것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야 하는 지 다시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 책 말고 본능적으로 집어든 책은 틱낫한 스님의 "용서"라는 책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그 책을 집에 데려가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책에 있는 문구처럼 '용서는 결국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고, 그것만이 지옥 속에서 구원 받는 길"이라는 걸 누군가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병을 알게 되고 단지 좋은 가치이거나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해서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 살아 나가기 위해 주변 사람들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용서하기로 했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테니까. 사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그 요인 중 하나라고 마음 속으로 의심하던 것일 뿐이지 확신할 수는 없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께서는 병은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계절과 같이 어차피 찾아올 병이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측면도 있었다.


앞으로 정말 일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이전만큼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10년 동안 이렇게 일을 해온 것. 남들보다 더 열심히 압축적으로 일해왔기 때문에,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열심히 했어야 한다는 후회는 적어도 없으니 다행이지 않을까. 열심히 살아왔던 시간이 있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남은 시간들도 잘 보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어떻게든 매일 운동을 하고 관리했을 때는 잠깐이지만 병이 사라졌었고, 오히려 몸도 더 건강해졌었다. 오히려 운동도 할 수 없거나, 운동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복시와 다른 증상들이 다시 생겼다.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의 증상 밖에 나타나지 않도록 나를 막아준 것에 더 가까울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가 그 시기 듣고 싶었던 말은 생각보다 너무 아무 것도 아닌 말이었다. 병을 진단 받은 초반에 어떻게든 병을 치료해보고자 한의원에서 침치료를 받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근육 근막에 계속 침을 놓으면서 안타까워 했다.


"몸이... 몸이... 너무 안 좋네요. 몸이 이렇게 될 때까지... 중증 근무력증이 올 수 밖에 없는 상태네요."

"몸을 너무 막 쓰고 살아와서 그런 거 같네요..."


"아니, 열심히 살았어서 그래요"



  그 한마디를 듣는데 순간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생각해보니, 단지 그 한 마디 듣고 싶었던 거 같아서. 내가 미련하게 살아서 혹은 어떤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열심히 살아서 그랬을 뿐이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아무리 성실하게 건강 관리를 해온 사람이라도 찾아올 수 있고, 반대의 경우에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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