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에 응급실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신입 사원을 교육했던 시절, 한 명이 과호흡이 와서 새벽에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던 적이 있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다급했던 병원에서 기억. 그 때의 기억과 미디어에서 보던 장면 때문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던 응급실 속의 풍경과 너무 달라서 이질적이었다.
응급실에 오면 당연히 가장 먼저 진료를 받게 되거나, 늦더라도 15분 이내에는 바로 의사 선생님이 달려오실 줄 알았다. 그런데, 응급실에도 응급환자들이 우선순위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루트보다 조금 더 응급하다는 것일 뿐, 생사를 당장 다투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응급실의 환자들도 순서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응급실이 그러한 곳인 줄 몰랐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 두 시간 정도 지나서, 임신한 몸을 이끌고 아내가 응급실로 왔다. 임신한 아내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 미안하면서도, 간호사인 아내가 옆에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대기 시간이었고 이름을 부르면 피를 뽑고, 이것저것 안과 검사를 했다. 마지막은 MRI 검사였는데, 딱 몸 만한 통 안에 들어가서 쇳소리를 듣는 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폐쇄공포증이 없는 사람도 폐쇄공포증이 생길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검사가 끝나니 새벽 시간이 되어 있었다.
며칠이 지나 검진 결과를 들으러 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걱정했던 피검사나 MRI 검사 등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은 맞는데, 심한 스트레스나 여러가지 원인으로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에트라빌이라는 파란 약을 처방 받았다.계속 먹을 필요는 없고, 증상이 심해지면 먹으라고 했다. 에트라빌의 주요 증상은 우울증, 편두통, 야뇨증. 약 덕분에 몇 주 전 자다가 이불에 지도를 그려서 부끄러웠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났다.
아무리 피곤하고 몸이 안 좋아도 어른이 그럴 수 있나 무력하고 우울했다. 얘기하지도 않은 증상을 선생님은 어떻게 알고 계셨을까. 우울증, 편두통, 야뇨증 세 가지 다 그 때의 내가 조금은 앓고 있는 증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흔한 부작용은 몽롱해지는 느낌과 함께 심한 졸음이 온다는 것. 다행히도 그 후로 약을 먹고는 했지만, 그 때 처방받았던 알약은 아직 남아 있었다.
다시 세상이 두 개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1년 6개월 뒤. 올해 2월쯤 이었다. 새벽 수영을 하러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매일 6시에 맞춰 수영을 하러 갔다. 수영을 하고 나면 7시가 조금 넘는 시간인데 잠깐 아이를 돌봐주고 출근을 하러 나섰다.
지하철 역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뛰어가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어떻게든 건강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는 거의 매일 회사 뒤에 있는 남산 타워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남산을 가는 건 응급실 가기 전에도 했던 루틴이었다.
그 전에는 체중 감량 목적이었다면 바쁜 삶 속에서도 건강을 지키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기도 했다. 업무 시작하기 전에는 늘 아침에 칭찬, 감사 일기를 썼다. 때때로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더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하거나 스트레칭, 찬물샤워를 하기도 했다. 스트레스, 불안 관리와 명상 등에 대한 책과 유튜브도 열심히 읽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실천하려고 했다.
나는 늘 성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스타트업의 리더였다. 입사 전 6명이던 회사는 이제 50명이 넘었고, 우리 팀만 해도 20명 남짓이었다. 회사의 성장에 따라 내 역할도 계속 변해야 했다. 늘 배우고 성장해야 했다.
무엇보다 나는 곧 돌을 맞이할 아이의 아버지였다.
처음에는 다시 두 개로 보이는 것 같은데 정도였다. 다음 날, 그 다음 날, 매일매일 눈의 이상을 체크해보았다. 아침이라 그럴 수도, 어쩌면 안경을 바꿔서 그럴 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다. 원래 8년 정도 끼고 다니던 애착 안경이 있었는데, 어디에서 잊어버렸는지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결혼식 용으로 구매했던 안경을 잠깐 끼던 시기이기도 했다. 찾더라도 워낙 오래된 안경이고, 난시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기분 전환도 할 겸 안경을 다시 맞추러 갔다. 안경을 맞추기 위한 검사를 하는데 검안사 분께서 고개를 계속 갸우뚱 하면서 여러 번 렌즈를 교체했다. 조금 더 잘 보이게 하려면 프리즘 안경을 더 두껍게 쓰면 되는데, 미용 상으로 보기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그런 것은 괜찮다고 답변드렸다. 그런데 결국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안과에 가보셔야 겠지만, 이 정도면 안경으로는 교정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표님의 아내 분도 성인사시 수술을 하셨는데, 알아보시는 걸 권장한다고 했다. 성인 사시라니,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확신할 수 없었던 복시 증세는 더 분명해져 갔다. 모든 세상이 이제 두 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거리에 사람들도 모두 두 개로 보였다.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하나의 물체가 하나로 보이지 않았다.
복시가 생기면 똑같이 두 개로 보이던 사물들은 거리가 극도로 좁혀지면 하나로 보였다가 사라지고는 한다. 왼쪽의 사물이 진짜일까, 아니면 오른쪽의 사물이 진짜일까. 아니면 그 중간 어딘가쯤 실제 사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날은 원래 두 개이던 물체였는데, 내 눈의 증상 때문에 하나가 두 개로 보인다고 오인한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