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기 때문일까.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아빠의 목소리에 다시 똑바로 길을 쳐다보는데, 도로에 노란색 중앙선이 두 개로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차가 두 대 씩 겹쳐 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처음 본 이상한 광경에 속으로 너무 놀랐으면서도, 겉으로는 놀랄 만큼 침착했다.
서울에서 잘 살고 있을 것으로 믿는 아빠에게 이상 증세를 이야기했을 때 아빠가 너무 걱정할 것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커서 그랬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시골 길이었다. 갓길에 차를 옆에 세우려고 하던 중에 한쪽 눈을 감았더니 다시 중앙선이 하나로 보였다. 그렇게 차를 세울까 하다가, 조금씩 한 쪽 눈 씩 20분 간 번갈아 감으며 시골 집에 도착했다.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날 아침부터 피곤한 일정이었다. 오랜만에 낸 휴가였지만 갑자기 오전까지 중요한 고객에게 자료를 보내야 했고, 내가 작업해야 했다. 남부터미널 앞 롯데리아에서 시켜둔 치킨을 뜨거운 상태로 먹다가 반은 버려두고, 허겁지겁 들고 갔던 노트북을 꺼내서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핸드폰으로 핫스팟을 켜고, 고속버스에서 2시간은 넘게 멀미를 하면서도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2시간은 더 달려서 도착하자마자 운전했다. 그러니 피곤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며칠 내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계속 피로했다. 그 때는 순간적으로 피곤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내려온 지리산이었다. 아빠는 은퇴를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집을 어떻게 할까 몇 년 전부터 고민하다가, 지붕과 벽 같은 것들을 손 보기로 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모부와 인부 둘과 함께 집을 고치는 중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집은 매우 오래된 집이지만 예전에 민박을 하기도 했어서, 3채의 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며칠 내내 고생하는 아빠가 안쓰럽기도 하고,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돕기 위해 휴가를 썼던 것이었다. 오래된 벽지를 뜯어내고, 시멘트를 깨고, 잡일들을 하며 며칠을 보냈다. 평소, 그렇게까지 몸을 써서 일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피곤했다. 지리산에 있는 내내 사물이 하나로 보이는 듯 하다가도 조금씩 두 개씩 겹쳐서 보였다. 피곤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몇 개로 보이세요?
그렇게 서울에 돌아와 출근한 날, 회사 건물에 있는 안과를 갔다. 생각해보니 안과를 간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신체검사를 하거나, 안경을 맞추는 일 외에는 시력검사도 한 일이 없는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성실한 자세로 검사에 임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내 눈 앞에 손가락을 들고 몇 개로 보이냐고 했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조금씩 이동하며, 손가락을 따라오면서 보라고 했다. 여전히 두 개로 겹쳐 보인다고 했다.
"*복시" 증상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사물이 중복해서 보인다는 뜻이었고, 정확히 나의 증세였다. 조금 더 정확히는 "원인 불명의 내사시"라고 했다. 말 그대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성인들의 경우, 드물지만 증세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보통, 눈의 운동 근육 문제이거나 뇌신경 관련 문제일 수도 있는데 검사 만으로는 알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진단서를 받아 나왔다.
그 날부터 계속해서 물건이 하나로 보이는지, 두 개로 보이는 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나로 보이는 듯 하다가, 미묘하게 겹쳐서 보일 때도 있었고 약간 멀어져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로 들어가는 쭉 뻗은 복도는 겹쳐서 보이는 게 조금 심할 때는 땅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여서 어지럽게 느껴졌다. 도수가 너무 높은 안경을 쓰고 걷거나, 놀이공원의 사방이 거울로 달린 방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진단 받고 3일 차 정도였을까, 4일 차 정도였을까. 지하철에 내려서 회사로 걸어가려고 하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걸을 수 없었다. 한 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웠는데, 그 순간 눈꺼풀이 미친듯이 날 뛰는 게 느껴졌다. 내 몸인데 전혀제어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것 또한 처음 겪는 증세였다. 온 몸이 통제가 안되는데 신경 근육들이 날 뛰는 느낌이었고, 무력감과 혼란에 패닉 상태였다.
어떻게든 회사 문까지는 갔는데 도저히 걷기가 어려워 문 앞에서 바로 연차를 썼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알렸다. 그 해 아빠가 뇌졸증 증세로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처음 겪는 몸의 변화에 뇌나 신경 쪽 문제일 수도,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서둘러 서울대병원으로 택시를 불렀다.
*복시 : 1개의 물체가 2개로 보이거나 그림자가 생겨 이중으로 보이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한 눈으로 볼 때 사물이 2개로 보이는 현상을 한눈 복시(단안 복시)라고 합니다. 또한 눈의 정렬이 잘못되어 생기는 복시를 두눈 복시(양안 복시)라고 합니다. 이 경우에는 한쪽 눈을 감으면 복시의 증세가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