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파업으로 병원을 예약하고 4개월이 지나서야 안과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동안 세상은 여전히 두 개로 보였다. 성인 사시를 의심했던 나는 무서웠지만 사시 수술을 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안과 선생님은 모든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고는 몇 개로 보이냐고 물어보셨다.
복시가 심해질 수록 사물은 더 멀어져 보인다
물어보셨던 게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특히 눈꺼풀이 쳐지거나 하지는 않는지 같은 것들을 물어보셨던 게 기억이 난다. 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는지, 일은 얼마나 하는지 물어보셨다. 올해는 더욱 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거나 공부했고 밤을 새우기도 일수였다. 나만 조금 더 고생하면 회사도 가족도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진행해보는 AI 교육 준비를 위해, 아무리 시간을 써도 부족했다.
이것만 잘되면 나도, 가족도, 회사도 모두가 잘 될거라고 믿었다. 잠이 너무 오면 수험생처럼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때려 넣었고, 몸살이 심하게 걸린 때에도 약을 먹어가며 일을 했다. 퇴근길에 몇 번 머리가 팽팽 돌아서 쓰러질 것 같았던 적이 있었다.
밤엔 나도 모르게 기절하듯 쓰러져 자기도 했다. 이 정도로 무리하면 그럴 수 있지. 주변의 이야기처럼 나이가 드니까 정말 체력이 떨어지는 구나. 지금은 눈이 불편하니까 더 어지러울 수 있지. 그땐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일을 반드시 줄여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인생의 은인 중 한 분인 안과 선생님께서는 젊은 사람이 불안해서 어떡하냐고 하시며, 입원해서 빠르게 여러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하셨다. 검진 당일, 생각지도 못하게 여러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하게 되었다. 안과에서는 6개의 검사를 했는데, 그 중에는 눈에 얼음 팩을 대었다가 사진을 찍는 검사도 있었다.
여러 번 피를 뽑기도 하고, 새벽에는 두 번 다시 들어가기 싫었던 MRI통에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손가락과 얼굴에 전극을 대고 전기를 흘려보내는 검사를 했다. 선생님은 일을 줄여야 한다고 했지만, 병실에서도 새벽까지 노트북을 꺼둘 수 없었다. 모든 검사가 끝난 날, 선생님께서는 2주 뒤에 신경과와 내분비 내과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잡아주셨다.
신경과 검진을 받기 전날 밤, 심한 악몽을 꿨다. 1시간 뒤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별 생각없이 악몽 이야기를 했다. 신경과 선생님 역시, 내 눈 앞에서 손가락을 펴 보이셨다.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모든 방향에서 몇 개로 보이냐고 물어보셨다. 나의 대답은 언제나 두 개였다. 간격은 똑같이 멀어보이는지, 눈꺼풀이 쳐지지는 않는지, 저녁이 되면 힘이 빠지지는 않는지 같은 것들을 더 물어보셨던 것 같다. 선생님은 어떤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톤으로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중증근무력증 입니다. 희귀질환입니다"
"중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일지, "근무력증"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소한 듯 알 것도 같은 병명 때문일지. 갑자기 희귀질환에 완치는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 였을지. 처음 듣는 병명에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할지, 혹시 가벼운 병에 너무 오버 하는 것은 아닐지 알 수가 없어 멍하게 있었다. 이 순간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선생님이 하셨던 모든 말씀이 그대로 허공 속으로 퍼지면서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모든 내용이 선명하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진료실을 나오고서도 여전히 얼마나 심각한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아내에게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 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간호사인 아내는 말했다. '오빠, 그거 심해지면 죽기도 하는 병이야. 절대 가벼운 게 아니야.'
진료실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던 아내도 진료비 결제를 하고 난 뒤 무너져 보이는 듯 했다. 병원비를 90%나 할인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희귀질환자들은 산정특례라고 해서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병원비를 지원받는다. 평생을 병원에 다녀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너무 고마운 제도이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달갑지 않은 할인이다.
아내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중증근무력증 중에서도 중환자들을 봤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첫 진료라서 혹시나 진단이 틀리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기대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산정특례까지 바로 등록된 걸 보는 순간 무너져버린 것이다. 진료실에 나오자마자 핸드폰으로 중증근무력증을 검색해 이것저것 찾기 시작했다.
중증근무력증(Myasthenia Gravis). 10만 명 중에 10명 정도가 발생하는 신경근육계 희귀 질환. 면역체계가 신경과 근육 접합부에 있는 아세틸콜린 수용체를 비정상적으로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신경 신호가 근육에 전달되지 않아 근육이 약해지고 쉽게 피로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근력 약화는 지속되지 않고 심해졌다가 괜찮아졌다가를 반복한다. 그래서 활동을 멈추거나 휴식을 취하가면 일시적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오전에는 상대적으로 괜찮았다가 저녁이 될 수록 증상이 피로해질 수 있다. 그러나 환자마다 발생하는 증상 및 양상이 다양하다.
출처 : https://drtarunmathur.in/
발병 원인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환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환경 하에서 재발하거나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부분 처음에는 근육이 섬세한 눈 주변에 증상이 와서 눈꺼풀 처짐이나 복시가 발생하는 안구형 증상이 발생하고, 그 중에 6~70%는 전신형으로 발전해서 팔,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으로 발전한다.
심한 경우에는 머리를 빗지 못하거나, 걷기가 힘들어져 정상생활을 하거나 일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연하곤란이 오거나, 말이 어눌해지거나 발음하기 어려운 언어장애 증상이 올 수 있다.
환자들 중에는 근무력증 위기, 급성 위기가 발병하여 호흡기관에 영향을 끼쳐 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다만, 과거에는 사망률이 40% 이상으로 매우 높았으나, 현재는 치료약의 발전으로 5~12%로 현저히 감소했다. 대부분의 증상은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을 만큼 좋아질 수 있으나, 완치는 불가능하고 평생 약을 복용해가며 줄여가야 한다.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난 그저 모두를 위해서 열심히 해왔을 뿐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을 저질러 온 것일까. 그 동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루고 참아왔던 것들이 한 번에 터지는 기분이었다.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고 화나고 억울해서, 그리고 슬퍼서 보라매 공원 벤치에 앉아 아내와 나는 손을 마주 잡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