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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Jul 09. 2017

촌스러운 지갑

지갑을 선물 받았다. 비오는 날 백화점에 혼자 가서, 지갑을 열심히 고르고 다시 사진을 인화해 코팅해 넣는 마음이 너무 고맙고 고마웠다. 언제부터 쓰고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꽤 오랫동안 지갑을 썼다. 이미 낡을 때로 낡은 지갑. 내가 쓰던 지갑의 브랜드는 저가의 촌스러운 이미지의 브랜드라고 했다. 브랜드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고, 나는 들어봤기에 좋은 브랜드인 줄 알았는데 어쨌든 그런 지갑을 낡은 채로도 이리 오래 쓰고 있었다.


그 지갑도 선물 받은 지갑이었다. 지금 보면 촌스러운 그 지갑도 처음엔 반짝반짝 빛나고 새 것일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렇게 낡고 촌스럽게 되어버렸지만 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선물을 준 사람도, 그 때의 나도, 그들도, 그 시간들도 지금 보면 아주 촌스러웠을 지 모르겠다.


촌스럽다는 것이 나쁜 표현은 아니지만, 너무 꼭 맞으면서도 이질적인 단어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더 이상했다. 낡디 낡은 지갑을 미련 없이 버렸다. 그렇게 바로 버리지 않았다면 나는 또 꽤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낡은 물건일 뿐일 지도 모르는데, 그 세월과 흔적에 많은 생각들이 담긴다. 매일 같이 손을 대던 지갑이라 그랬는 지도 모른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지갑에 손을 대며 살아간다. 어쩌면 진작부터 그리 해야 했을 지도 모른다. 촌스러웠던 시간들과 사람들은 또 나름의 시간들을 각자에 맞게 살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촌스러운 나도 촌스러운 채로 나에 맞게 살아갈 시간이다. 현재의 소중함을 잃지 말고, 이 지갑이 또 다시 빛 바래서 더 좋은 추억들이 깃들 때까지 그렇게 믿고 나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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