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하고 사사로운 Jun 04. 2018

주도성이 높은 사람들에게도 규율이 필요할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고 추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팀이 있습니다. 가만히 둬도 알아서 무언가를 계속하는 사람들이기에 어떤 규율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자율을 방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사람들에게 규율이란 우리를 옥죄는 것, 쓸데없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렇다면 주도성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팀에서 규율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의미가 없을까요? 



저는 주도성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팀일수록
규율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규율은 출근시간이나 복장규정 같은 좁은 의미 뿐만 아니라 조직과 개인 간 이행하기로 한 약속(이번 주에 하기로 한 업무 등)이라고 폭넓게 정의하고 글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첫째, 암묵적인 약속은 오히려 주도적인 사람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더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코대리는 이번 달에 채용 사이트를 개편하는 일이 가장 팀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다른 회사를 벤치마킹하고 구직자들을 분석해서, 꽤 그럴싸한 채용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월 말이 되어 코팀장은 코대리에게 얘기합니다. 


  “그래, 채용 사이트는 잘 만들었어요. 그런데 지난 번에 이야기한 직무 순환 제도도 잘 되고 있죠?” 

  “팀장님, 그냥 그런 아이디어 정도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거 아니셨나요?” 

  “아니요, 우리 이번 하반기에 경영상황이 안 좋아서 채용은 없고 직무 순환 제도로 인력 충원하는 걸로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네, 저는 하반기에도 상반기처럼 채용을 늘리는 줄 알고, 지금까지 채용 개편만 준비했는데.” 

  “그래, 그건 잘했어. 그건 잘했는데 말이야…” 



  코대리는 나름 주도성을 발휘해 본인 업무의 개선점을 도출하고, 좋은 결과물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했어야 하는 일은 되지 않았고, 코팀장도 코대리도 난감하기만 합니다. 서로 “나는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게 중요한 것 같은데?”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각자 어떤 것을 해야 하는 지 합의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코대리는 우선 해야 하는 직무 순환 제도를 하고 나서, 주도적으로 채용 업무도 개편함으로써 더 많은 인정과 자율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코팀장도 팀에 가장 필요한 업무를 빨리 완료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인사 제도와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대리는 매일 9시까지 출근하는데, 옆에 있는 코과장은 늘 9시 반에 출근합니다. 코대리는 어쩐지 본인이 계속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이야기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9시에 출근하던 코사원도 9시 반에 출근하는 것 같습니다. 코대리의 불만은 쌓여만 갑니다. 어느 날, 동료에게 이야기했더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몰랐어? 팀장님이 업무 시간은 상관없으니까 알아서 나와서 근무하고 일만 잘하면 된다 라고 했었대.” 

규율로 공표된 적은 없지만 암묵적인 룰이 팀에 있었습니다. 코사원도 눈치를 보다가 코과장과 팀장님에게 물어보고 출근시간을 바꿨던 것 같습니다. 코대리도 그 다음 날부터는 9시 반에 같이 출근하기로 합니다.  

매일 9시 반에 출근하는 코과장은 매일 6시 반에 퇴근합니다.


  그런데, 코사원과 코대리가 어느 날은 5시 반에 퇴근하고, 어느 날은 6시에도 퇴근합니다. 코과장은 아무리 자율 출근제라도 8시간은 채워야 되는 것은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코사원과 코대리는 오늘 조금 사정이 있어서 일찍 퇴근했으니, 내일은 더 근무를 하거나 더 몰입해서 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코팀장은 업무 시간은 상관없으니까 팀원들이 알아서 시간을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코사원과 코대리, 코과장은 서로 말은 안 하지만 묘하게 서로의 근무 패턴을 신경쓰고 스트레스를 받고, 감시하고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 외에 쓸데 없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본질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더나 먼저 그 조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규율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암묵적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꽤 많습니다.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심 시간은 정확히 몇 시간인지, 복장이 자유라는 데 샌들은 신어도 되는 것인지 등등. 아무리 주도적인 사람들도 규율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먼저 조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눈치 보면서, 어디까지 행동해야 하는지 선을 긋습니다. 어디 까지가 주도성이고 어디 까지가 규율인지 몰라서, 오히려 몸을 사릴 지도 모릅니다. 


  일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 정해질 수 있는 것들은 정해주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할 지 모릅니다. 쓸데 없는 것 때문에 서로 추측하고 눈치보고 싸우지 않도록 정해 둔 최소한의 규칙. 저는 그것이 규율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자율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규율을 지킴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어렵다면 여러분이 어떤 작은 가게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오전 시간과 밤 시간을 대신 맡아 줄, 알바생을 한 명 뽑았습니다. 손님을 응대하는 법, 커피를 만드는 법, 정산하는 법 등을 알려줬습니다. 또, 근로계약서도 작성했습니다. 자, 이제 모든 걸 알려주고 계약서까지 썼으니 알바생에 대해서는 신경을 끊을 때일까요? 


  제가 주인이라면 여전히 불안해할 것 같습니다. 이 친구가 내가 없어도 손님을 잘 응대하고, 잘 커피를 만들까? 정산에서 실수는 없을까? 시간이 지나면 불안이 잦아 들까요? 제 생각에 주인의 불안은 여전히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 알바생이 정말 믿고 맡겨도 될 만큼 일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까지는요. 


  가게 주인이라면 언제 그런 생각이 들까요? 알바생이 이제 먼저 묻지 않아도, 오전에 매출이 얼마가 나왔는지 주인에게 알려줍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자기 선에서 해결하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즉각 알려줍니다. 재료가 부족해질 것 같으면 미리 주문을 하거나 주인에게 알려줍니다. 언제 찾아가도 늘 테이블을 청결하게 유지합니다. 가게 주인은 이제 알바생에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만큼만 잘 해주면 좋겠어. 손님이 너무 없을 때는 계속 서 있지 말고, 책을 가져와서 읽거나 시간을 보내도 돼.” 


  오전 시간의 알바생은 어떻게 하면 가게 주인이 안심하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약속하기로 한 몇 가지들을 이행하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알바생은 이제 약속한 것들만 수행하면 다른 시간들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약속한 것들을 문제없이 이행하고 신뢰가 쌓이는 과정에서 알바생은 더 많은 자율을 얻을 것입니다. 


  밤 시간의 알바생 역시 아주 주도적입니다. 사장님에게 어떻게 하면 가게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지까지 제안하는 수준입니다. 혼자서 신제품도 만들어 보고 고객들에게 반응을 물어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늘 정산은 어딘가 비고, 테이블은 청결하지 않습니다. 가게 주인은 이야기 합니다.


  “적극적인 건 참 좋고 고마워. 근데, 말이야 테이블은 좀 잘 정리하고 이런 거 하면 안될까?” 


  회사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들이 자율적인 문화가 조직의 성과로 구성원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리더들도 사람이고 팀원들과 어느 정도 수준의 신뢰가 쌓이기 전 까지는 불안한 마음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들은 더 많은 자율을 주기 위해, 구성원들은 더 많은 자율권을 획득하기 위한 공통의 언어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서로가 신뢰를 쌓도록 도와주는 최소한의 장치가 규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사실 규율이 없는 조직은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은 규율이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착각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달리 규율이 적을 뿐, 확실한 규율 하나가 아주 강하게 존재했습니다. “여기서 이 역할과 책임을 질 사람은 너 뿐이야. 너가 하기로 한 일을 반드시 수행하지 않으면 회사가 위태로워질지도 몰라” 


  몇 해 전, 넷플릭스가 본인들의 기업 문화를 소개에 대한 문서에서 휴가에 대한 제한도, 보상에 대한 특별한 제한도 없는 것을 발표하여 큰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 조직도 쓸데없는 규율들을 없앨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읽어보면, 오히려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하지 않고, 꼭 지켜야 하는 규율은 뭐야?” 넷플릭스는 그것이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되 철저하게 개인이 책임지는 문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것은 넷플릭스의 휴가 제도나 보상 제도가 아니라 꼭 지켜야 하는 규율을 정하고, 어떻게든 지켜 나가려고 한 단호함은 아니었을까요? 



Epilogue : 변화가 많은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규율은 필요할까? 

  짐 콜린스는 이미 17년 전 Good to Great에서 ‘규율의 문화’를 제안했습니다. 규율의 문화는 자유가 있되 체제 내의 자유를 누리며 자신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수립한 목표는 엄중하게 책임을 지는 문화입니다. 또, 한 번 약속한 것에 대해 자신의 결과를 과장하기 위해 상황의 변화 등을 이용해 목표를 재조정하거나 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짐 콜린스는 관료적 문화는 무능력과 규율의 결여를 보완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부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는 것이 그 시작이며, 부적합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관료적인 문화가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부적합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관료제는 점차 강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규율의 문화가 관료제의 폐해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료제의 폐해에 대한 해결을 넘어, 많은 변화 속에서 더 민첩하고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오늘 날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규율 있는 문화가 가치가 있을까요? 저는 변화가 많은 비즈니스 환경에서 오히려 규율 있는 문화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 규율 있는 문화가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환경의 변화가 많을 수록,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해진 절차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조직의 오랜 노하우나 프로세스가 더 이상 새로운 환경에는 동작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리더들은 과거와 달리 더 이상 가장 빠른 길로 가는 정답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모든 일에 대해 일일이 지시하고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불안과 조급함으로 더 지시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면 관료제의 부정적인 모습만 더 강화될 뿐입니다. 리더는 팀원들에게 정답이 아닌 방법들을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팀원들은 리더의 판단과 행동에 불신을 갖게 되고,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무기력해 집니다. 리더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적인 행동을 더 반복하게 되고, 조직과 팀원들은 태만해집니다. 


  인간은 자율적인가, 타율적인가에 대한 오랜 철학적 논쟁이 끝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현재 비즈니스 환경에서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율적인 인간이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서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타성에만 젖어서는 도저히 이 빠르고 거대한 변화에 맞설 수 없습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최대한 자율적으로 팀원과 팀이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규율은 자율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신경 쓸 요소들을 제거해 줌으로써 우리들을 더 주도적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규율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무거워서, 원문의 단어를 찾아봤었습니다. 짐 콜린스가 규율있는 문화의 원래 단어는 discipline of culture였습니다. Discipline이라는 단어는 우리 말로 규율, 훈육, 훈련이라고 번역된다고 합니다. 


  Discipline의 어원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요. 우선, 'disciple' 즉 '추종자·복종·가르치다'라는 뜻에서 찾는다면 훈육은 권위 있는 사람에게 복종하거나 외부로부터의 규제를 가르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두 번째 해석은 ‘disco’, ‘나는 배운다’라는 뜻에서 왔다는 해석입니다. 외부로부터의 규제나, 복종에 따른 권위적이고 관료제 적인 훈육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책임과 규제를 통해서 학습하고 발달한다는 의미이죠. 


  적절한 규율은 개인들이 더 주도성을 발휘하고 자율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팀에 정말 꼭 지켜야 하는 규율은 무엇일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주도성이 높은 팀 만들기 실전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