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구원자들
조용할 것 같은 병동의 수면시간, 자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병동은 유독 시끄럽다. 한 번씩 애를 먹이는 치매 어르신들의 돌발행동 때문이다.
A 할머니는 수액을 맞고 난 날이면 유독, 기저귀에 소변을 자주. 그리고 많이 본다. 아무리 갈아줘도 금방 눈 소변에 몸이 찝찝하니까 self talking(혼잣말)을 크게 하곤 한다. 혼잣말이 그냥 혼잣말이면 좋겠는데 온 병실이 떠나가라 고함까지 쳐대니 이것 참 낭패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시 침대를 간호사 스테이션 옆 로비로 빼서 우리가 지켜보기로 한다. 서로를 위한 방법은 그것뿐이니...
이제 나와 우리 동료 선생님들은 그 버릇에 익숙해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재빠르게 뒤처리를 하고 환자를 안심시키고 이내 재운다.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새근새근. 라바 인형을 아들 삼아 안고 잠든 할머니가 있다. 힘들다가도 그 모습이 꽤 귀엽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다른 B 할머니. B 할머니는 유독 말괄량이 같은 할머니인데. 한 번씩 돌발행동으로 사람을 뒤로 나자빠지게 하곤 해서 긴장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없다. 그런 할머니가 오늘도 어김없이 이제는 늙어버린 아들을 "알라야~(애기야!) 하고 목놓아 부르며 혼자 있어서 외로울 테니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 한다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 우리는 아무리 "여! 기! 병! 원!이에요 할머니!" 하고 말해도 할머닌 되레 "뭐라고? 버스 시간이 없다고? 우야꼬!" 하면서 통곡을 하는 상황의 반복. 그럴 때면 나도 벽을 붙잡고 통곡을 하고 싶어 지는데, 할머니는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 의연하게 다음 사고를 치려고 침상 아래로 다리를 내리고 어딜 부리나케 가야 한다고 난리다. 겨우 진정시켜 침대 위로 앉혀드리고 눕혀드린다. 이제 어르신들이 이런 행동을 할 때면 진정시키는 멘트들도 술술이다. 물론, 안심을 시켜줄 만한 여러 가지 색의 언어 팔레트에 하얀 거짓말도 여기저기 섞게 되고 말이다.
새벽에 쿵 소리가 나서 심장이 떨어졌다. 직감적으로 그 할머니인 것을 알아차리고 병실에 가보니 이번엔 소변을 눠야 한다고 요강을 찾으며 용을 쓰다가 벽에 머리를 콩 부딪힌 게 울린 소리임을 알게 된다. 잠깐씩 인지가 돌아오는 할머니에게는 앉은자리에서 소변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거동마저 불편하니, 기저귀에 소변을 보면 된다고 안심을 시켜드리고 다시 재웠다.
이번엔 정말 잘 주무신다. 이제야 급한 일을 갈무리한다. 눈치를 슥 살펴보고, 귀는 열어둔 채로 있다. 문득 임경선 작가의 산문집 [다정한 구원]의 내용이 생각나는 밤이었다. 임경선 작가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리스본을 여행하며 치유받은 내용을 다시 한번 되짚듯 회상해본다:
누구에게나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닐까. 단 몇 장의 글에서 작가의 추억이 물씬 느껴진다. 여기서 딸은 작가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구원자’ 인 것 같다. 꼭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은 또 어떤 사람의 구원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딸도 엄마인 임경선 작가를 때때로 구원자처럼 여길 테니, 둘은 책의 제목처럼 서로의 ‘다정한 구원자’가 맞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과 우리 간호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치매도 어르신들을 자주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기 때문이다.
치매 병동은 정말 크고 작은 일들이 많다. 때때로 잊어버리고 때로 기억하는 어르신들에게, 태어난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어르신들에게, 그래서 우리는 다정한 구원자이고 싶다. 당신들의 날카로운 말에 서걱, 맘이 베어도 악의없는 그 모습에 깎아도 아프지 않은 당신의 손톱이 되고 싶다. 그렇게 서로의 다정한 구원자이고 싶다. 구원자라는 말은 너무 권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르신들이 때로 우리를 구원해주기도 하니 그들은 우리의 구원자. 우리가 그들의 돌발 행동 위험에서 도움을 주고 치료를 해주니 또 당신들의 구원자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환자와 간호사라고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어르신들에게 역으로 치료받을 때도 있으니까.
새벽녘 혼자서 병동을 배회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시 병실에 데려다주는 동안 그 따뜻한 손에 구원을 받을 때도 있고, 별 것 아닌 어르신들의 미소 하나에 기름때가 낀 것처럼 턱턱 막히고는 하던 가슴이 풀어질 때가 있다. 아까 위에 할머니들을 대표로 삼긴 했지만 병동 어르신들 모두가 속을 썩이다가도 이내 방긋방긋 웃으며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우리를 달래준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그 노래가락에 맞추어 신나게 라운딩을하고, 치료를 수행하며 하루를 여민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서로의 다정한 구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