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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뚜막 고양이 Jan 13. 2023

2. 고백

<4월의 밤공기>

. “잘 지냈어?”

지난여름 이후 우리는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에게서 오는 연락을 피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답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그에게 깊이 빠질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다.


그 사이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고 따뜻한 봄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문득 그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에게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해 보았다.

오랜만에 불쑥 연락을 해 온 내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갑게 받아주었다.

“어, 오랜만이야. 목소리 들으니까 반갑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는 그에게 물었다.

“ 나 지난겨울에 병원에 입원했었어. “

그가 말했다.

“ 뭐??? 어디 많이 아팠어?”

그의 말에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팠다면 큰 병이었을 텐데 불치의 병이라도 걸린 거면 어떻게 하지?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 별거 아니야. 두통이 너무 심해서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받느라 입원한 거야.”

아팠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저려왔다.


“얼굴 한번 봐야지. 맛있는 거 사 줄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에게 만나자고 얘기를 꺼냈다. 나의 뜬금없는 연락에도 반갑게 받아주고 기꺼이 밥까지 사주겠다니... 왜?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나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렇게 멋대로인 나를 그는 왜 만나고 싶어 할까? 그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친구라서? 아니면 너무 무료하고 따분하던 차에 내가 연락을 해서 반가웠던 걸까?

그렇게 우리는 2주 후 화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그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곧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에 다시금 구름 위를 걷는듯한 기분이 되었다.


“야!”

나는 엘리베이터에 막 올라타려는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깜짝이야. 놀랬잖아.”

그는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의 슬림한 몸에 딱 맞는 핏의 슈트를 입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경 쓰고 온 차림이었다. 그 모습이 품위 있고 성숙한 사회인 같아 왠지 멋있어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쑥스러워져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스시 오마카세가 제공되는 “코우“라는 스시바에서 만났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바 형태의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안내하는 직원들은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우리를 대했다. 그리고 쉐프가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하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물을 조금씩 들이켰다.


우리가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쉐프의 손이 스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정성껏 만들어진 스시를 예쁜 접시에 올려놓으면 입에 한가득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었다. 나는 아귀간과 멍게는 먹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맛이 나거나 식감이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은 잘 먹지 않았다. 그도 음식에 대해 까다롭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보다 어쩌면 더 심할지도 모른다.


나는 쉐프의 손에서 빚어지는 음식들을 보고 있자니 흥미로운 마술쇼를 보는 느낌이었다. 여러 종류의 맛있는 스시들을 계속 먹을 수 있어서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다.그는 술 한잔 곁들이고 싶다며 “화요”라는 술을 주문했다. 직원이 글라스 잔에 커다란 아이스 볼을 넣어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서로의 잔에 술을 조금씩 따뤘다. 나는 살짝 입에 대어 보고는 너무 독한 술맛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독한 술도 제법 마셔봤는지 컵 속에 얼음을 빙글빙글 돌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셔 넘겼다.


우리는 옆에 나란히 앉아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옆에 있은 커플을 보고는 몇 살로 보이냐느니, 특별한 날이라 잔뜩 외모에 힘주고 온 것 같다느니 시답잖은 이야기로 서로 웃으며 속삭였다. 귓속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간질간질 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도 마치 다른 연인들처럼 사귀는 사이로 보였을까?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넓디넓은 도산대로변을 걸었다. 시원하고 산뜻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난 4월만 되면 그때 생각 많이 나. 우리 대학교 때 술 마시고 취해서 자주 걸었었잖아. 목적지도 없이.. 난 그때 그 공기가 아주 좋았거든. 지금이 딱 그 느낌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나도 이 계절에 촉촉한 밤공기를 좋아했었다. 누구라도 설레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진 밤공기였다.  ‘이 계절이 되면 항상 나를 생각했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하늘 높이 뻗은 고층 건물들을 성벽 삼아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밤하늘은 짙은 네이비색으로 빛났고, 나의 눈도 설렘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도로를 시끄럽게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의 소음마저도 우리를 위한 하나의 배경음악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리 둘이 이곳의 주인공인 것 같았다. 함께 길을 걷는 일이 이렇게 가슴 벅차게 행복할 일인가.


계속 걷다 보니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밤공기가 조금은 차갑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8시였다. 우리는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 맥주 한 잔 더 마시고 헤어지기로 했다. 대학생 때 자주 갔던 압구정 로데오 거리.. 한동안 침체하였던 그곳이 다시 젊은이들의 거리로 변모하고 있었다. 한껏 젊음과 개성을 뽐내고 있는 무리를 지나 한산한 맥줏집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나에게 투정 섞인 하소연을 하듯이 물어왔다.

“그래서 작년엔 왜 내 연락을 씹은 거야? 너는 자기 마음대로야. 연락하고 싶으면 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잠수 타고..”

나는 늘 그랬었다. 문득 생각나면 그에게 연락했다가 우리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느껴지면 잠적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딱히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말이야..... 사실은...

네가 갑자기 좋아져서....”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질문에 나도 모르게 그에게 고백을 해버렸다.

그는 순간 정지된 화면처럼 멈추어 있더니, 다시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아이 모야 장난치지 마. 말도 안 돼. 내가 왜 갑자기 좋냐?? 진짜 이유를 말해보라고.”

그는 전혀 안 믿긴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네가 아주 좋아져서

우리 사이가 잘 못 될까 봐 겁이 났어.”

..........

그는 당황한듯하면서도 기분이 꽤 좋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도 너 좋아해. 근데.. 잘... 모르겠다.”

그는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그랬다. 우리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마음이 씁쓸해졌다. 나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가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이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우리는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지만 내 머릿속에는

 “잘 모르겠다........”

라는 그의 말이 계속해서 떠돌아다니고 있어서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술을 마저 마시고 각자 택시를 타고 헤어졌다.

나는 왜 인제야 그가 좋아진 걸까? 이렇게 오랜 기간 친구로 잘 지내왔는데 그것도 갑자기...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로 돌어간다면 지금과 달라질 수 있었을까?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시간은 맞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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