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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뚜막 고양이 Jan 23. 2023

12. 삶의 의미

<4월의 밤공기>

그의 형에게 전화가 온 이후로 더 이상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된 연유인지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는 나와의 이별을 이미 준비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헤어지는 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무슨 얘기라도 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봉지를 꺼내 들었다. “아침”이라고 쓰여있는 약봉지 안에는 여섯 알의 약이 들어있다. 매일 아침에 먹어야만 하는 약이다. 나는 2년 전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약을 먹는데도 우울한 기분이 떨쳐 버릴 수 없고 아무 의욕이 없는 것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왜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살아갈 이유도 생각나지 않았다.

힘든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잠깐의 설렘에 취해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불구덩이로 뛰어든 벌레와도 같이 느껴졌다.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아니 혐오스러웠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와의 추억을 되짚어보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그때와 지금의 현실사이에 괴리가 너무 심해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뭔가 사정이 있을 거야.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할 사람이 아니야.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연락은 해줄 수 있지 않나? 또다시 서운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정말 이대로 헤어지는 건 아니겠지… 아직 약속한 많은 일들도 하지 못했다. 함께 보기로 한 영화도 아직 보지 못했고, 겨울 바다를 보기 위해 가기로 한 부산행 기차여행도, 한강에서 커플 자전거 타기로 한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 그것 말고도 앞으로 그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내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 노력해 봤자 마음만 무너질 뿐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한없는 행복감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몇 주 전 말도 없이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왔던 그가 생각이 났다. 그는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불쑥 찾아온 그가 더 반갑게 느껴졌다. 우리는 가까운 편의점에서 초콜릿우유를 사들고 길을 걸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은 달빛에 그의 눈빛도 맑게 반짝이는 듯했다.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던 우리는 좁은 골목길에 다다랐다. 그는 나를 꼭 안아주고는 입을 맞췄다. 그날의 키스는 유난히 달콤했다. 내 입가가 온통 촉촉해졌지만 하나도 더럽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치 신성한 이슬이라도 되는 듯 맑고 깨끗하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멈추더니 다시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는 더 거칠게 키스를 했다. 나의 심장은 터져나갈 듯 쿵쾅대며 요동쳤다. 그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으이구 귀여워.”

그날의 일을 떠올리자 이 상황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그의 형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지우 씨?”

“네, 안녕하세요.”

”사실 우리 정원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아직 깨어나지 못했는데 무의식 중에 지우 씨 이름을 부르더라고요. “

그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응급수술 하고 회복 중에 있는데 나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아 연락했다고 했다.

작년에 두통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에게 동맥류가 있다는 얘기는 언뜻 들었지만 약 먹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 큰 문제없다고 해서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뇌동맥류가 터지면서 뇌출혈이 발생했다고 했다. 응급수술을 하긴 했지만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온전히 회복될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연락이 끊어졌던 그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던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의 형에게 병원이름과 호수를 전해 받고는 찾아뵙겠노라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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