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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뚜막 고양이 Jan 22. 2023

11. 사랑 그리고 소유

<4월의 밤공기>

나는 그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점점 더 그와 모든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졌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행복했던 것이다. 매일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있지 않을 때도 그의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를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이 짜릿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와의 결혼까지도 꿈꿔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친구분 딸을 만나 보라고 하셨어.”

“뭐??”

나는 눈이 휘둥그레 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여자한테 관심 없어. 그저 한번 만나서 밥만 먹으면 돼.”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지금 그걸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나는 발끈 화를 내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사실 아버지는 그 여자랑 결혼하길 원하고 계셔. 만나서 내가 잘 얘기할게.”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그도 내가 남자친구와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던걸 생각하니 끝까지 안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소개팅을 하도록 보내주다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결혼까지도 생각하고 있던 나였는데.. 왠지 그는 나를 결혼할 상대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상상만 해도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나는 그가 없이는 이제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며칠 전 드라이브 할 때 그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 회사 옆 오피스텔 28층에서 20대 여자가 담요를 온몸에 감고 뛰어내려서 죽었어.”

“ 근데 그 여자가 운동선수 ㅇㅇㅇ와 스캔들 있었다고 하더라고.”

“죽은 현장이 많이 끔찍했나 봐.”

나는 눈을 감고 죽은 여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창 밖을 멍하니 보다가 창문 밖 시멘트 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게 두려웠겠지만 살아내는 게 그 보다 더 큰 고통이었으리라.

창 밖으로 뛰어내리기 전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지만 눈물만 더 흘러내릴 뿐이다.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온몸이 터져나가겠지... 그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충격에 휩싸일 거야’... 그런 생각 끝에 담요로 온몸을 감싼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았다. 그녀가 되어 생생하게 그 상황에 몰입하니 너무 끔찍해서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 그 여자 불쌍하다.. 여자가 무슨 잘못이야.”

죽은 여자의 영혼이 평안을 찾았길 잠시 기도해 보았다.


나의 생각은 극으로 치달아 견뎌내기가 힘들었지만, 별일 없을 거라며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누구…. 시죠?”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전화 한 남자는 그의 형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정원이랑 만나고 있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두 분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정원이는 결혼할 사람이 따로 있어요. 제 말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결혼이라는 건 사랑 하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그 약속을 미리 어른들끼리 해놓으셨어요.

사랑한다고 꼭 그 사람을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서로 멀리서 응원해 주는 그런 사이로 지내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형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자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와 모든 것들을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화를 끊고도 그의 형이 한 말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아 내 마음은 갈 곳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사랑한다고 꼭 그 사람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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